등록 : 2017.06.05 18:40
수정 : 2017.06.05 18:57
정용주
염경초교 교사,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개혁의 방향은 경쟁과 효율이 아닌 협력과 자율 중심의 교육, 학교와 마을이 결합한 공동체 기반의 교육자치 강화,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미래역량 형성 교육으로 요약할 수 있다. 현 정부는 교육 공약을 성공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현장의 의견과 요구를 다양하게 모으고 있다.
역대 정부의 교육개혁은 그 방향뿐 아니라 방식도 문제였다. 교육개혁 방식이 국가 주도이면 중앙정부가 통일적으로 개혁을 선도하여 파급력을 신장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정부는 모든 교육주체를 일방적으로 선도하면서 새로운 이론을 보급하고 단기간에 혁신성과를 내도록 강제한다. 이 과정에서 토론은 비효율이 되고, 교육현장에서는 생각의 차이가 제거되며, 개혁의 실행만이 남는다. 결국 모든 사람이 정부의 의도와 방향대로 교육개혁을 수행하는 ‘수도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이 만드는 더 심각한 문제는 교육개혁이 단기간에 성과를 내지 못할 때 나타난다. 교사, 학부모를 변화에 저항하고 거부하는 행위자로 규정해 개혁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갈수록 강력한 중앙의 리더십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위로부터 구체적인 로드맵이 매우 디테일한 청사진으로 제시되고, 무엇이건 통일적으로 행동해 이른 시간 안에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도록 하는 것이 박정희 패러다임이다. 이것이 내면화된 체계로 자리잡은 박정희 규범의 영향이 교육에도 크다.
박정희 패러다임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헤게모니를 가졌던 국가구조와 운영원리였다. 관치경제와 그 결과인 국가와 재벌이 동맹을 형성해 노동자와 노동운동의 시민권을 부정하고, 시민사회의 자율적 결사체를 억압했다. 그리하여 자유로운 시민사회는 축소되고, 지방자치를 통한 권력 분산도 금지됐다. 반공의식, 국가주의, 공동체 가치를 강화하는 교육이 진행됐다.
그 결과, 박정희 패러다임은 내면의 가치로서 근본적으로 우리의 생각, 행동양식을 규정하는 규범이 되었다. 따라서 교육개혁은 그 가치와 비전 그리고 교육 제도와 체제의 개혁뿐 아니라, 우리 내면의 생각·가치·신념을 규율하는 박정희 규범에 대한 성찰과 병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박정희 규범이 내면화된 사회는 전체주의적이고 성과 지상주의적인 특성을 갖는다. 박정희 규범을 내면화한 이들은 동일한 가치를 가진 국민으로 교육받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식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를 가능한 한 더 높은 학력을 얻는 것으로 삼게 된다. 학교교육의 목표도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줄 세우는 것이라는 가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개혁의 대상이 되는 대학 서열화, 자사고 및 특목고의 입시학원화, 사교육 광풍 등 교육 현상도 박정희 규범의 내면화로부터 이어진 자발적 동의의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교육개혁은 법률을 제정하고 제도를 바꾸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도 없다. 교육개혁은 인적자원 모델에서 깨어남, 미래에 대한 환상과 행복한 낙관주의로부터 깨어남, 기술적 진보에 대한 완고한 믿음으로부터 주체의 깨달음과 깨어남이 상호 침투하는 어떤 과정이어야 한다. 이 점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는 교육개혁은 국민교육헌장을 시대적 현실에 맞게 바꾸고, 입시제도를 개혁하고, 고교 체제를 바꾸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모든 교육개혁의 목표인 학생의 성장을 위해 교사, 학부모, 교육관료가 우리 안을 규율하고 지배하는 뿌리깊은 박정희 규범을 인식하고 바꾸려는 깨달음이 반영된 지난한 과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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