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6.11 20:24
수정 : 2017.06.11 20:33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몇 해 전부터 우연한 계기로 우주개발계획 수립과 우주국제협력에 관한 과학자들의 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정치학자인 나를 제외하고 대부분 과학자로 이루어진 이 회의에 참여하는 일은 항상 흥분과 설렘이 있다. 과학자들의 언어로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도 재미있지만, 정치학자 입장에서 보면 매우 간단한 정책이나 예산 문제로 곤혹스러워하는 과학자들을 보는 일도 흥미롭다. 올해에는 국가우주위원회가 5년마다 수립하여 보고하는 제3차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을 작성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주개발계획 수립에서 과학자들이 직면하는 어려운 문제는 발사체나 탐사선 개발 등의 기술적 차원보다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우주정책이 어떻게 해야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우주과학기술 관련 정부 예산을 늘리기 위해 어떤 논리를 제시해야 하는가 등이다. 아시다시피 우주를 선거구로 하는 국회의원은 없고 지역구민도 없다. 현실적으로 우주정책에 직접 영향을 받는 지역의 시민이 없고 그 정책 효과가 일자리 창출 등으로 당장 나타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국회나 여론의 지지를 받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아예 우주 관련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
우리가 어떤 정책을 정당화할 때는 대개 두 가지 논리 가운데 하나를 따른다. 첫째는 그 정책의 효과가 좋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결과주의론적 정당화이고, 둘째는 결과와 상관없이 그 정책 자체로 필요하기 때문에 시행해야 한다는 의무론적 정당화이다. 우주과학기술은 당연히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효과를 따지는 결과주의론적 정당화가 쉽지 않고, 우리의 미래 생존과 관련된 국가전략 차원에서 의무론적 정당화가 필요한 분야이다. 우주산업이 정부의 정치적 결단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것은 이 분야가 첫째,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이고, 둘째, 대규모의 예산이 필요하며, 셋째,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우주산업도 사회경제적 차원과 국가안보 차원의 이해가 함께 존재한다. 미국의 우주산업이 군사적 프로그램으로 시작해서 상업적 적용으로 발전하고 있다면 유럽은 사회경제적 차원으로 시작해서 국가안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 민간기업인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가 이미 발사된 로켓을 회수하여 비용을 대폭 절감함으로써 일반인의 우주시대를 앞당기고 있다면 유럽우주국(ESA)은 갈릴레오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의존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위성항법장치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대부분의 우주과학기술은 선진국 중심의 경쟁에 진입장벽이 존재하고, 전략기술임을 이유로 국제적 수출통제 체제가 존재한다. 또한 이 기술들은 사이버전이나 대테러전, 우주전 등의 미래전과 군의 독자적 정찰 및 정보획득 능력 확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주과학기술의 발전은 국민적 지지 위에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국가전략 차원의 문제지만 정치적 의지가 지나치면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표류하게 된다. 예컨대, 2025년으로 예정됐던 달착륙선을 2020년으로 앞당긴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은 장기적인 투자를 통한 독자개발보다 국제협력을 통해 기술을 사오는 것을 선호하게 하는 유인이 될 수 있었다. 우주 공간의 평화적 이용과 과학적 탐사를 통한 국가안전과 경제발전의 기여를 고려하면서 당장의 성과에 급급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미래전략을 세우는 일은 장기적인 국가의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 우주개발은 어느 분야보다도 정치적 의지와 과학적 논리 사이의 균형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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