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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11 18:11 수정 : 2017.07.11 19:02

이원재
(재)여시재 기획이사, 경제평론가

얼마 전 고용노동부는 ‘사회적기업 1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 10주년이 계기였다. 낯설었다. 법 제정이 10년 된 것은 맞고, 지원정책도 그만큼 나이를 먹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적기업 자체는 어떤 형태로든 법과 지원정책 이전부터 존재하던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육성법은 10년 전인 2007년 제정됐다. 법률은 취약계층을 고용하고 그들에게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이라고 사회적기업을 정의했다. 여기에 맞춰 인건비 지원 등 다양한 지원제도가 나왔다. 사회적기업을 정부가 인증하기 시작했다. 인증 사회적기업은 지금 1700개가 넘고, 3만7천여명이 고용되어 있다.

이런 내용만 보면, 사회적기업의 역사는 정부 지원의 역사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사회적기업은 법률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민간 영역에서 오래도록 이어진 도도한 흐름이다. ‘정부도 영리기업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자’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만든 사업조직들이 그 원형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뒤 실업사태가 벌어질 때, 지역 비영리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취약계층을 고용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을 벌였다. 1990년대 초에는 도시빈민지역을 중심으로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생산자협동조합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친환경 유기농산물 생태계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만든 생활협동조합들도 비슷한 목적이었다.

법률과 지원정책이 없을 때부터 그들은 사회적기업을 경영하고 있었다. 고용도 빈곤도 환경도 사업 대상으로 삼은, 그들이 사회적기업의 원형이었다.

지난 10여년 끌고 온 정부 주도 모델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민간 주도로 질적 변화를 꾀할 때다. 정부 역할은 여전히 크지만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 직접 끌고 가는 대신, 민간이 끌고 가는 데 필요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나서야 한다.

사회적기업을 법적 실체로 인정하는 게 가장 먼저다. 사회적기업은 주주이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 주식회사도 시장에서 거래를 하지 않는 비영리법인도 아닌 다른 조직이다. 상품을 생산하고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거래를 하되, 목적은 사회문제 해결에 있는 조직이다. 이를 담을 법인격이 지금은 없다. 세제, 지배구조 같은 제도 역시 정비되지 않았다. 영국의 공동체이익회사(CIC)가 사례가 될 수 있다.

사회성과연계채권(SIB)처럼 정부사업을 장기적 시각을 갖고 외부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를 활성화하는 일도 필요하다. 1년 단위로 지원하는 대신 5년, 10년 단위로 지원하되 그 결과를 명확하게 평가하고 그에 따라 보상하도록 구조를 짜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있으면 민간 자본도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적기업에 투자하기가 쉬워진다.

사회적기업에 투자하는 임팩트금융도 키워야 한다. 투자는 기업에 여유를 줌으로써 혁신할 시간을 준다. 오래 기다려주며 사회적 가치도 평가해주는 인내 자본이라면 더 그렇다. 네덜란드의 트리오도스 은행처럼 순수 민간금융이면 더 좋지만, 영국 빅소사이어티캐피털처럼 정부가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금융도 괜찮다.

지금까지 사회적기업은 빠르게 성장하는 사회를 뒤따라가며 파생되는 문제들을 치유하느라 바빴다. 지금부터의 사회적기업은 어쩌면 정의와 효율의 균형추를 장착하고 사회를 앞서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를 치유하는 일을 더 커진 국가에 맡기고 나면, 사회적기업은 새로운 해법을 찾는 혁신의 기관차 역할을 할 수 있다.

지원정책에 적응하며 생존하는 사회적기업은 원형이 아니라 한 변형일 뿐이다. 지금이 바로 원형으로 돌아가기 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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