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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12 18:38 수정 : 2017.07.12 21:03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북한은 작년 7월 정부 대변인이 발표한 성명에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며, 김 위원장의 영도를 따르는 노동당, 군대, 인민의 의지”라고 주장했다. 나름대로 국가 최고 수준에서 비핵화를 다짐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믿을 수 있을까? 한국도 미국도 한반도 비핵화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재확인했다. 한국과 미국 정부의 말은 북과 달리 신뢰해도 되는 것일까?

세 나라 정부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지난주에 있었다. 핵무기금지조약이 지난 7일 유엔 총회에서 채택됐다. 핵무기 개발과 비축 및 사용 위협 등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다. 법적 구속력을 갖는 조약의 형태를 갖추어 핵무기 자체를 불법화한다. 미국이 핵무기를 개발하여 사용한 지 70여년 만에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해 중대한 진전을 이룬 것이다.

특히 기존 핵비확산조약(NPT)의 불평등성을 극복한 점이 눈에 띈다. 핵 국가의 핵은 용인한 채 비핵 국가만 핵을 개발하지 말라는 비확산조약의 모순은 한반도에서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다. 맞춤형 억제전략이라는 수사가 감추고 있는 진실은 미국이 핵무기로 북을 공격할 수 있다는 현실이고, ‘북핵문제’라는 표현의 실체는 미국의 핵에 북도 핵무기로 대들고 있는 현상이다. 핵무기금지조약은 이러한 모순을 넘어 모든 핵무기를 불법화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지향한다. 미국과 한국, 북 모두가 환영해야 할 조약인 것이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브라질 등이 주도하여 세계 141개국이 참여한 이 조약에 미국도, 한국도, 북도 참여하지 않았다. 미국은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한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이 조약의 협상 자체에 반대했다. 이뿐만 아니라 나토 및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에 결의안 반대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오바마의 모든 정책을 뒤집는 데 바쁜 트럼프 행정부도 유독 핵무기금지조약은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여 협상 과정에 아예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도, 북도, 일본도 마찬가지다.

하여 묻는다. 한반도 비핵화를 원한다며 왜 핵무기금지조약에 조인하지 않는가? 한반도 비핵화는 국제법적으로 비확산조약이나 핵금지조약과 배치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조약들에 의해 강화될 것이다. 일부는 이 조약의 실효성을 의심한다. 하지만 회의론이 득세했던 화학무기, 생물무기, 지뢰 등을 금지하는 조약들도 지금에 와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가. 많은 의심을 받던 비핵지대만 해도 현재 5개 지역에 설치되어 100여 나라가 참가하고 있다. 심지어 핵 강국인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인 몽골도 비핵지대다.

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담대한 여정’을 시작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을 환영한다. 하지만 평화는 국가가 거저 가져다주지 않는다. 안전을 국가에 맡기고 가만히 있을 때 시민에게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세월호 참사가 가르쳐줬다. 무슨 신성한 말인 듯싶은 ‘안보’는 사실 안전 보장을 줄인 말이다. 안보를 국가에 맡겨두면 마찬가지로 끔찍한 일이 시민에게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비핵화나 평화를 국가가 가져다줄까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국가에 맡겨두었던 안보를 시민이 되찾아와야 한다. 국가 안보를 이제는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안보로 재정립해야 한다. 시민이 안보의 주인이 되는 길,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담대한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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