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18 18:17
수정 : 2017.07.18 19:07
박구용
전남대 교수·시민자유대학 이사장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아나운서, 앵커, 교수, 사장, 다 좋은 역할이고 어울리는 직책입니다. 그래선지 그중 하나로 몰아 부르기가 마땅치 않아 ‘님’이라 부릅니다. 우선 느닷없는 호명과 사과에 생뚱맞다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2013년 5월의 일입니다. 님께서 <제이티비시>(JTBC)로 떠났을 때입니다. 처음엔 배신감과 모욕감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안 지나 어긋난 감정이라 여겼습니다. 진실을 사랑하던 님의 마음이 바뀐 게 아니었으니 배신이라 할 수 없고, 옛사랑을 천시한 것도 아니니 모욕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짝사랑이 끝장나니 자부심이 추락했습니다. 그 맘을 담아 당시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나는 ‘변절의 흑백논리’로 님을 비판했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 열없지만 사과를 합니다.
내가 님의 제이티비시 선택 자체를 비판한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님이 제이티비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조롱한 적도 없습니다. 나는 다만 제이티비시를 포함한 종편이 한국사회의 악성 종양이라는 진단서를 변조했다고 님을 추궁했습니다. 내 판단에 님은 당시 제이티비시 진단서에서 악성을 경계성으로 바꾸어 해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국민들로부터 제이티비시가 양성 판정을 받았으니 내가 틀린 셈입니다. 그러니 나의 과잉진료에 대해 반성해야겠습니다.
과잉진료엔 과잉처방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종편의 회생을 바라지 않았던 나는 처방전을 쓰지 않았습니다. 반면 님은 자신이 치료약으로 기재된 처방전을 내 좋았습니다. 특효약이었습니다.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치우치지 않겠습니다’, ‘귀담아듣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님의 말은 곧 실천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과 국정농단 사태를 관통하면서 제이티비시는 더 이상 이 사회의 종양이 아니라 거꾸로 사회의 종양을 치료하는 약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나도 제이티비시를 시청하고 있습니다. 이때쯤 한 친구가 님에게 사과하라고 날 몰아붙였습니다. ‘진실의 입’이 된 님을 몰라본 죄가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사과할 일은 아니라 여겼습니다. 님이 비록 제이티비시의 좋은 치료약이긴 하지만 종편의 지속 가능한 처방전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편들도 제이티비시처럼 시장의 논리에 따라 님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인물을 영입할 수는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의 공영방송을 보면 나쁜 관료보다 영리한 장사치가 덜 해로운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도 나는 ‘손석희 없는 제이티비시’가 두렵습니다.
지금 제이티비시는 돌연변이 종편입니다. 염색체의 수적 이상 돌연변이인지, 아니면 구조적 이상 돌연변이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질적 변이라면 님을 통해 변태한 제이티비시는 더 나은 사회를 열어갈 것입니다. 반면 유전되지 않는 양적 변이일 뿐이라면 우리는 제이티비시를 사랑한 만큼 변절의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그러니 아직은 사과보다 경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나는 나 자신도 경계하지 못한 인사입니다. 님을 추궁했던 내가 ‘김제동의 톡투유’에 출연했던 것입니다. 기막힐 일입니다. 김제동이라는 이름에 가려 제이티비시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인사가 님을 비판했으니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2006년 이후 <한겨레>와 <경향신문>에서 칼럼을 쓰며 나름대로 긴장하고 경계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허술했습니다. 다시 다잡는 마음으로 깊이 반성합니다. 망가진 <문화방송>(MBC)에서 아직도 귀양생활을 하고 있는 수많은 손석희를 다시 뉴스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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