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19 18:22
수정 : 2017.07.19 20:37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7월18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 출석했다.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는 아이의 아버지가 나와 의료비 부담의 실상을 증언했다고 한다. “입·퇴원을 반복하느라 지금까지 들어간 치료비만 1억4천만원이고, 퇴원 후 집에서 의료소모품비로 매달 170만원에서 250만원까지 든다.” 안타깝고 답답하다.
“중증 질환을 가진 사람이 순식간에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 달라”, “어린이 치료비만큼은 국가에서 책임져줬으면 좋겠다”는 말은 의료비 때문에 파산과 가난에 이르지 않는 것이 권리라는 것, 그리고 국가가 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리라. 어린이 치료비만일까, 나는 의료(비) 보장이 국가 책임이자 의무라는 데에 완전히 동의한다.
이런 권리와 의무를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현실은 ‘각자도생’이 대세인 듯싶다. 국민건강보험이 있는데도 국민 80%가 민간보험에 가입해 있다는 것이 생생한 증거다. 십중팔구는 네댓 가지 민간보험을 들고 월 보험료만 몇십만원을 내야 하면, 그게 무슨 공적 의료보장인가. 민간보험까지 합해도 가계가 흔들릴 정도로 치료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예도 흔하다.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국가의 오랜 ‘무’책임 또는 ‘약한’ 책임.
국가는 왜 강한 책임을 피하려 하는가?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스스로 의료보장의 의무를 진정한 의무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라 생각한다. 또한, 사정이 그리된 근본 이유는 헌법에 권리와 의무가 분명하게 규정되지 않은 탓이라 여긴다. 의료보장의 권리와 국가 의무를 주장하면서 기댈 수 있는 헌법은 36조 3항 한 가지뿐이다.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이 밋밋하고 어정쩡한 조항에서 강한 책임을 끌어내기란, 상상하기 어렵다.
그 헌법이 곧 바뀔 것 같다. 이번에는 의료를 보장하는 국가의 책임성이 분명해질 수 있을까? 마침 논의 중인 재난적 의료비나 본인 부담 상한, 치매국가책임제 같은 정책에서는 국가의 책임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치매는 국가와 가족 사이에서 책임 분담 문제가 더 복잡하다. 장담하지만, 헌법이 정책과 예산의 지침 역할을 하면 국가 책임은 훨씬 명료해질 것이다. 너무 많은 의료비 부담이 위헌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상상해보라.
논의 초반이지만, 건강권을 강화하는 방향에는 크게 이론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얼마나 ‘강한’ 건강권이냐는 것. “모든 국민은 적절한 보건, 의료 서비스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국회 개헌특위가 내놓은 새 헌법 초안이다. 권리와 의무 주체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지금보다는 낫지만, 적극적 권리와 의무로 보기에는 좀 약하다.
기본권과 사회보장에 관심이 큰 이찬진 변호사의 제안은 좀 더 적극적이다. “국내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모든 사람은 정신적 및 육체적 건강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개인의 경제적 부담능력에 따라 건강권이 침해되지 않는 수준의 적절하고 합리적인 의료보장 및 공공 보건서비스 및 관련 제도를 실시할 의무를 진다.”(일부) 둘 중에 고르라면, 나는 당연히 후자에 찬성한다.
남은 일이 더 많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에 대한 권리와 구분되는 ‘건강할 권리’다. 치료 이전에, 아프지 않을 권리, 건강을 누릴 권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예를 들어 산재를 당하지 않을 권리. 새 헌법은 강한 건강권을 포함해야 한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