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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24 18:35 수정 : 2017.07.24 19:31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최저임금은 직무가 반복적이고 단순해서 대체되기 쉬운 저숙련 노동자들의 교섭력을 높여주는 수단이다. 선진국에서는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이 격심한 양극화와 만성적인 불황을 타개할 새로운 희망으로도 대두됐다. 그동안 소폭의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과 고용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데는 의견이 대체로 모아졌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렸을 때도 정책 의도가 달성될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2015년 4월 당시 9.47달러였던 최저시급을 1년 사이에 최대 13달러까지 올린 시애틀의 실험이 주목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이 결정됐을 때, 사업체들이 문을 닫고 시애틀 경제가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예언-또는 저주-하던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 3년째인 시애틀은 호황 중이다. 최근에는 그간의 효과에 관한 워싱턴대 팀의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최저임금 인상이 없었을 때에 비해 시급 19달러 미만 노동자들은 월간 노동시간 및 소득이 각각 9%와 125달러 감소했고, 시급 19달러 이상 노동자들의 노동시간과 소득은 급증했으며, 시애틀의 전체적인 노동시간과 소득에는 변함이 없었다는 게 주된 결론이었다.

이러한 결론은 ‘재앙’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시급 19달러 이하 노동자들의 처지가 악화되었다는 부분을 부풀려 최저임금 인상이 재앙을 가져왔다거나 그 위험이 입증되었다고 침소봉대한 언론도 많았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들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그 결론도 근거가 박약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시급 19달러 양쪽의 노동자들 간에 일어난 변화는 사업주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맞서 저숙련자를 고숙련자로 대체해서가 아니라 이례적인 호황으로 전반적인 노동 수요가 급증해 더 높은 임금 쪽으로 옮겨간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저숙련 노동자들의 소득이 격감했다면 엄청난 소요가 있었을 게다. 그러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없었다. 시애틀시의 의뢰를 받아 또 다른 연구를 진행 중인 버클리대 팀의 결론은 한층 긍정적이다.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도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용과 소득을 늘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애틀에서는 계량분석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보다 복잡한 변화들도 진행 중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저임금 전업 노동자들과 최근 급증하고 있는 파트타임 노동자들이 삶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는 도움을 주었지만, 지역에 뿌리를 내린 소규모 사업체를 외곽으로 몰아내고 대형 프랜차이즈의 영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지역경제 생태계를 재편시킬지도 모른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최저임금 인상이 본격화되면 자동화와 기술혁신이 가속화되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질 구조조정을 슬기롭게 관리하는 것이 정책적 도전이라는 전망도 더해진다.

우리도 최저임금 시급을 크게 올리면서 ‘최저임금 1만원’을 향한 여정을 서두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기대와 함께 우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비이성적 반응보다는 우리 사회를 인간적이면서도 역동적인 공동체로 변모시킬 새로운 ‘모멘텀’으로 삼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최저임금 1만원과 함께 새로운 ‘좋은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할 이익과 손실을 경제주체들 간에 어떻게 공유하고 분담할 것인지에 관한 공정한 원칙을 세우고 일관성 있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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