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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03 18:11 수정 : 2017.09.03 19:00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8월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력 시위는 미국이 안고 있는 인종갈등의 딜레마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미국 안에서 민주주의 및 인권의 확산을 추구하는 범세계주의적 흐름과 백인 및 기독교 중심의 미국적 정체성 회복을 주장하는 신고립주의 흐름이 맞부딪히는 가운데 백인우월주의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시위가 열렸다는 사실은 미국 역사에서 반복되는 이들의 도전이 만만치 않음을 의미한다.

흔히 미국은 이민의 나라라고 일컬어진다. 이민의 주요 세력이 달라짐에 따라 초기 영국인이 주류를 이룬 앵글로아메리카 시대를 거쳐 유럽인이 주류를 이룬 유로아메리카 시대, 아시아와 남미로부터 본격적인 이민에 의해 시작된 다문화주의 시대, 그리고 최근에는 문화집단 사이의 경계를 넘어서는 초민족 아메리카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으로 이뤄진 문화적 정체성의 표현을 장려함으로써 개인의 상상력을 해방시키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생산력의 극대화를 추구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유색인종 이민을 받아들이면서 다문화 시대로 나아간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미국은 1882년 중국인 배제법을 통해 중국인 이민을 금지했고 1907년 일본과의 신사협약을 통해 일본인 이민을 사실상 중단시켰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인의 이민이 정식으로 재개된 것은 1952년 이민법을 통해서였고 1965년 이민법이 국가별 할당제를 폐지함으로써 비로소 아시아와 남미로부터 본격적인 이민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1924년에서야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별도의 법 제정을 통해 시민권을 부여한 바 있다.

흑인에 대한 차별 시정의 역사는 더 지난했다. 남북전쟁 직후인 1865년에서 1870년 사이에 수정된 헌법 13, 14, 15조는 각각 노예제 철폐와 시민권 인정, 투표권 부여를 명시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흑인 차별은 계속되었고 1896년 미국 대법원은 ‘분리하되 평등하게’라는 원칙 아래 인종분리를 합헌으로 판결하였다. 이 결정은 1954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에서 ‘인종분리는 그 자체로 불평등’하다고 판결함으로써 뒤집혔다. 이후 계속된 시민들의 투쟁은 1964년 민권법 제정과 적극적 평등실현 정책(affirmative action)의 도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적극적 평등실현 정책은 그 정당화의 논리가 최근 들어 변화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초기에 이 정책은 노예제로 인해 역사적으로 누적된 차별을 교정하는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도입되었다. 그러나 노예제의 직접적인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라진 지금 이 정책은 인종 및 문화적 다양성이 가져오는 공리주의적 이익에 초점을 맞춰 정당화되고 있다.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미시간대학의 입학정책에 대한 2003년 대법원 판결도 다양성이 미국의 사활적 이해임을 강조하면서 이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보편적 인권에 기초한 사회정의의 관점이 아닌 다양성의 공리주의적 이익에 근거한 정책의 정당화는 자신이 이 사회에 무슨 필요가 있고 어떤 기여가 있는지 입증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이 논리는 경기후퇴 시기에 사회적 소수와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 심해지는 배경이 된다. 결국 미국에서 백인우월주의의 공개적인 등장은 지구화가 가져온 빈부격차 확대와 경쟁의 심화에 반감을 갖는 시민들이 고립주의를 선호하고, 해외생산을 줄이고 공급선을 재편하면서 국가 간 노동과 상품의 이동이 줄어드는 탈지구화 시대의 구조적인 세계질서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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