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11 18:15
수정 : 2017.09.12 20:26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지난 8월 세상을 떠난 장애인부모운동 활동가 박문희 어머니의 추도식에서였다. 목이 멘 사회자가 몇번을 쉬어가며 완결한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어머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셨던 2004년, 강동구 고등학교엔, 특수학급이,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용히 그 문장을 읊조려보았다. 중학생 아들을 둔 어머니가 백방으로 쫓아다니며 들었을 말. 강동구 고등학교엔 특수학급이 없습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밤, 그녀는 이렇게 읊조리지 않았을까. 그럼 어떻게 할까요. 무릎이라도 꿇을까요.
지난 9월5일 늦은 밤,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주민토론회에서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무릎을 꿇었다. “모욕을 줘도 괜찮고 때려도 맞겠지만 아이 학교만은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눈물로 호소하는 엄마에게 주민들이 “쇼하지 말라” 소리쳤다. 부자동네 양천구엔 1개도 없는데 왜 힘없는 강서구에만 2개나 짓느냐며 억울하다 했고, 한방병원을 지어야 할 자리이니 빼앗지 말라고도 했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지옥이 따로 없다, 생각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 <그래, 엄마야>를 다시 꺼내 읽는다. 아이는 축복이 아니라 선고를 받는다. 도움 청할 기관은 어디에도 없다. 언어치료, 놀이치료, 운동치료, 물리치료. 치료의 종류는 끝이 없지만 판단은 모두 엄마의 몫이다. 용하다는 병원은 어디든 쫓아다니고 복지관이란 복지관은 다 찾아다니며 대기 명부에 이름을 올린다. 시댁의 냉대와 남편의 무관심 속에 홀로 분투하던 엄마는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이게 치료가 되는 게 아니구나.’ 장애를 받아들인다. 그때부턴 거부당함의 연속이다.
흔한 동네 유치원은 그림의 떡으로 변했고 비장애 아이들과 어울리게 하는 건 엄마의 욕심이 되었다. 일반 초등학교에 보냈지만 담임은 아이를 특수학급에만 보낸다. 교실엔 아이의 자리가 없다. 한 학기를 참았던 엄마가 선생님을 찾아간다. “우리 아이 글씨도 쓸 줄 알고 이야기하면 알아듣습니다. 반에서 수업하게 해주세요.” 오랜 시간 딸이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찾아간 엄마에게 교사가 말한다. “공부를 따라오는 것도 아닌데 학교에 다닐 필요가 있나요?” 특수안경을 쓰면 보이는 가상현실처럼 자녀가 장애를 입는 순간 그녀 앞에 놀라운 지옥도가 펼쳐진다. 도처에서 엄마의 무릎을 꿇린다. 그러나 설마 이들 앞에만 유별나게 나쁜 사람들이 득실거리겠는가. 다른 구는 모두 이타적인데 유독 강서구 주민들만 이기적이겠는가. 주민들은 억울하다. “장애인 다 싫어하잖아. 왜 우리한테만 그래!” 맞는 말이다.
특수학교 설립은 정의가 아니다. 애초 학교가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진정한 배움의 장이었다면, 그리하여 학교가 모든 학생을 차별 없이 받아들였다면 특수학교는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홉을 가진 사람이 하나를 가진 사람의 것을 마저 빼앗아 열을 채우고 싶어 할 때, 선심 쓰듯 내놓는 타협이 바로 특수학교다. 그런데 그마저도 가로막힌 밤, 엄마들이 묻는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2004년 박문희 어머니는 더 이상 세상에 묻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자신처럼 외롭고 막막했을 엄마들이 더 이상 무릎 꿇지 않는 세상을 위해 삭발을 하고 싸움에 나섰다. 그로부터 13년. 장애인 교육에 대한 법과 제도는 확장되었지만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은 여전히 그때의 저열함에서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그 밤, 엄마들이 우리 모두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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