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13 17:54
수정 : 2017.09.13 19:16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대북 제재가 영아사망률 증가에 미친 영향”
몇 년 뒤라도 이런 제목이 붙은 건조하고 우울한 조사 결과는 보고 싶지 않다. ‘원인 행위’가 없으면 저절로 그리되겠으나, 솔직히 비관적이고 무력하다. 지난 월요일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대북 제재는 최악의 상황을 조금 늦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끝 볼 때까지 더 빨리 가겠다”는 북한이 물러설 것 같지도 않으니, 역사적 비극을 마주할 마음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나도 어지간히 게을렀음을 고백한다. 북핵 문제가 워낙 엄중했던 탓에 마음이 딴 데 갔다고 하고 싶지만 변명이다. 강한 경제제재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뻔히 알면서도, 이번에는 상관없는 일처럼 생각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병원 때문에 원유 수출 금지에 반대한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아차 싶었다. 이런, 이란이 그랬고, 시리아가 어쨌다는 소리를 하고 다녔으면서도, 코앞의 북한 주민은 놓쳤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방도는 외교, 군사, 국방 전문가가 말할 테니 무슨 말을 보탤까만, 지금 돌아가는 형편에서는 그 ‘전문성’도 믿지 못하겠다. 경제제재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내 나름으로 열심히 뒤졌는데도 초강경 제재가 정답이라는 결론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왜 이런 방법을? 희망이나 가정이 아니라 실제 최선의 해결 방법이라는 튼튼한 근거를 가진 분은 알려주길 부탁한다. 머뭇거리지 않고 생각을 바꾸겠다.
나는 국제사회가 정설로 받아들이는 한 가지 효과, 아니 ‘부수적 피해’를 말하려 한다. 역사와 경험이 증명한바, 강력한 경제제재는 보통사람들의 삶과 생명을 확실하게 파괴한다. 미국의 금수 조치로 쿠바의 에이즈와 암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이라크에서는 경제제재 때문에 죽은 사망자가 미국-이라크 전쟁의 전사자보다 더 많다. 과거 유고슬라비아도 경제제재 때문에 전체 사망률이 10%, 병원 사망률이 30% 증가했다.
약품과 병원 시설이 받는 영향은 일부일 뿐, 더 중요하게 삶과 죽음, 질병을 가르는 것은 일상의 물질 조건이다. 굶주림, 추위, 더러운 물, 오염된 공기, 불결한 위생이 사람을 집단으로 죽이고 병들게 한다. 주민의 삶에 피해를 주지 않는 경제제재? 집권층만 목표로 하는 ‘핀셋’ 제재? 불가능하다. 개인이 죽고 병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살해’, ‘사회적 감염병’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피해가 ‘핀셋’이라는 것도 가볍지 않다. 사회적 죽음은 당연히 사람을 차별하고, 비슷하게 나쁜 조건에도 어떤 사람은 더 취약하다. 여성과 어린이, 노인이 그렇고, 본래 건강이 좋지 않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위험하다. 강력한 경제제재가 주민들, 그중에서도 더 약한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권력층을 압박하는 ‘전략’이란 말인가?
대북 제재는 이제 ‘생명윤리’ 문제가 되었다. 며칠 전 세계적인 보건분야 학술지 <랜싯>의 편집 책임자인 리처드 호턴 교수가 대북 제재의 정당성을 거론한 것도 이 때문이다. “목조르기 전략은 정치적으로 잘못되었고 도덕적으로는 비인도적이다. 김정은을 벌하는 것과 2500만 북한 주민을 벌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북한은 정치체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이기도 하다. 서구 지도자들이 한 국민국가를 악마로 만들기 쉬우나, 이미 고통 상태에 있는 주민들을 악마로 만드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효과는 불확실하고 ‘부수적 피해’는 명확한, 단순하고 나태한 해결 방법, 그중에서도 바닥으로 향하는 질주를 멈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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