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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18 17:54 수정 : 2017.09.18 19:02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불안하고 고단한 삶을 영속화시키는 주범은 노동조합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노조가 일자리 창출에 전념하는 기업의 발목을 잡아 더 많은 파이의 생산을 방해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나 하청기업 소속 노동자들의 몫까지 빼앗아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들을 보면, 높은 경제성장과 공정한 소득분배가 같이 달성되었던 1945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는 노조 조직률이 가장 높은 시기였다. 반면, ‘더 작은 국가와 더 많은 시장’의 구호 아래, 노조에 대한 공격이 가해졌던 1980년대 이후부터는, 대기업의 수익은 늘어났지만 불평등이 확대되었고 경제 전반의 성장률마저 하락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의 세계적인 불평등 현상은 노조의 이기주의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보루인 노조의 약화에서 비롯되었다. 노조의 쇠퇴로 인해 임금인하 압박이나 근로조건 악화 시도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없었고, 중산층의 몰락이 본격화되었으며, 저소득층 가정 아이들의 상향 이동성도 크게 둔화되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부자 감세, 규제 완화, 사회안전망 축소 등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정책들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도 노조의 약화와 관련이 깊다.

경제의 지속적 성장은, 생산의 파이가 어느 정도 고르게 분배되고, 열심히 노력하면 각자의 정당한 몫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모두에게 널리 공유될 때 가능하다. 노조 조직률이 높았던 ‘황금시대’의 미국이나 노사공동결정제도를 통해 노조의 경영 참여를 보장한 독일에서 성장과 분배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노조는 여기에 더해 노동자들의 집단적 활동과 결집된 힘을 바탕으로 정치 참여나 공익 제고에 적극 나섬으로써 시민사회의 든든한 토대가 되기도 했다.

우리의 경우, 노조가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노조 때리기’가 일정한 힘을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조의 약화가 아니라 노조의 혁신이다. 만약 노조가 경제성장의 동반자 역할에 소홀했거나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바깥에 존재하는 노동자 다수의 권익을 대표하지 못했다면, ‘노조 때리기’가 아니라 본연의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요구해야 할 터이다.

물론 변화의 동력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내부로부터 나와야 한다. 다행히도 최근 노조에서는 조합원의 필요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고 사회적 역할도 강화하려는 시도들이 진행 중이다. 매점·식당·의료·보육·먹거리·여행·연금운용 등의 경제사업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벌여 노동자의 복지를 충족시키고, 비정규직·퇴직자·해고자 등에게도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산업·고용 구조의 변화로 늘어나고 있는 시간제·파트타임·프리랜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담아낼 조직적 혁신을 꾀하고, 지역의 사회적경제와 협력해 더욱 많은 시민들과 만나며, 국가 차원의 의제에도 적극 나섬으로써, 사회의 공공선에 기여하려는 열망 또한 커지고 있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세우려던 ‘노동해방’의 깃발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경제적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약육강식 각자도생’의 상황에 내몰려, 노동자로서의 자긍심도 사라지고 노동조합의 공공성도 의심받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땀 흘려 일하는 보통 사람들이 존중받고 가치 있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던 그 ‘불온했던 꿈’이 사회적경제와의 참신하고도 담대한 협력으로 새로운 결실을 맺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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