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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09 18:26 수정 : 2017.11.06 14:38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로보칼립스’. 로봇과 아포칼립스를 붙여서 만든 신조어다. 로봇으로 인한 대량실업이라는 종말을 의미하는데, 선진국에서는 이에 관해 열띤 논쟁이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매사추세츠공대의 오터 교수 등이 발표한 논문은 로보칼립스가 오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연구는 1970년 이후 선진국의 산업별 데이터를 사용하여 기술혁신으로 인한 생산성 상승이 그 산업의 고용은 감소시켰지만, 소득과 구매력 증가를 통해 다른 산업들의 고용을 증가시켜 전체 고용을 늘렸다고 보고한다. 2000년대에 그런 효과가 작아졌지만 지금은 로보칼립스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보고도 있다. 아제모을루 교수 등의 최근 연구는 미국의 지역 노동시장 데이터를 사용하여 1990년 이후 산업용 로봇의 도입이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실증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 수치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미친 영향보다 훨씬 작았으며 컴퓨터 등의 다른 투자는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없었다. 또한 20년 내에 일자리의 절반가량이 로봇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연구도 유명하지만, 이는 기술적인 가능성일 뿐이며 대체하기 힘든 세부 직무를 고려하면 그 확률이 훨씬 낮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다른 연구는 1850년대부터의 미국 노동시장 데이터를 사용하여 일자리 변동률이 2000년대 이후 오히려 낮아졌다고 보고한다. 그러고 보면 로보칼립스에 대한 우려는 아무래도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바다 건너 한국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제시된 4차 산업혁명 담론이 지난 대선 시기 중요한 화두였고, 최근 정부도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산업혁명이 나타나고 있다는 증거는 희박하며 다른 나라들은 그런 단어도 잘 쓰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학자들은 기술혁명이 도래하고 있다는 생각 자체에 회의적이다. 1970년대 이후 그리고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총요소생산성의 상승이 크게 둔화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로보칼립스만큼이나 4차 산업혁명도 과장된 마케팅으로 보인다.

미래는 아마도 훨씬 복잡하며 극단적인 비관과 낙관 사이의 어디쯤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대량실업의 디스토피아는 아니라 해도 로봇시대가 불평등이 심각한 우울한 미래가 될 가능성은 높다. 오터 교수에 따르면 생산성 상승과 함께 교육수준에 따른 임금격차는 더욱 커졌고, 많은 이들은 인공지능으로 인한 소득양극화가 심각해질 것이라 전망한다. 반면, 새로운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와는 반대로 기술발전과 함께 최근 혁신과 성장의 정체가 나타나고 있는 현실은 경제학자들에게 커다란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이는 기술혁신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생산성과 임금이 낮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얻는 현실과 관련이 클 것이다. 이렇게 노동자의 힘과 몫이 줄어들고 기술독점기업의 이윤만 커지면 불평등은 심화되고 수요는 둔화되어, 투자와 생산성 그리고 성장이 모두 정체되는 역설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들은 미래에 관한 균형 잡힌 전망과 대응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저성장이 우려되는 한국의 현실에서 4차 산업혁명의 장밋빛 가능성과 정책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기술혁신이 가져올 수 있는 불평등이나 경제정체의 어두운 미래의 가능성에 관해서도 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의 제조업 노동자당 산업용 로봇의 수는 최근 급속히 늘어나 이미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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