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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02 18:14 수정 : 2017.11.02 19:39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여름에서 가을 사이, 부산에서는 홀로 죽음을 맞이하고 세상에는 뒤늦게야 주검이 발견된 이들이 유달리 많았다. 이른바 고독사로 분류된 죽음이 석 달 사이 27명. 확인된 통계만 그렇다. 부산시는 “고독사 위험군 관리, 실태조사, ‘민·관 협력 위기 가구 발굴단’ 운영” 등의 ‘고독사 예방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고독사도 전염병처럼 예방하고 관리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반면 부산의 반빈곤 센터는 고독사, 특히 청년 고독사 문제를 함께 마주하려면 경제적 빈곤만이 아니라 관계의 빈곤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논평을 냈다.

고독사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원인을 고령화나 청년 실업 등의 인구 변동과 경제적 요인으로만 환원하면 피상적이고 안이한 대책만 반복하게 된다. 삶과 죽음, 그 양식과 관계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삶과 죽음의 양식과 그 변화에 대응하는 사회적 대안과 정책이 필요하다. 1인 가구 대책이나 고령화 대책만이 아니라, ‘관계의 빈곤’을 근본적 차원에서 살펴야 한다는 반빈곤 센터의 제안은 매우 중요하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으나, 예상보다 아주 빨리 고독한 죽음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부산의 사례는 이미 도래했으나 실감하지 못하는 미래의 징후라 하겠다.

부산은 근대 산업자본주의의 메카이자 가부장제 사회의 전형으로 여겨지지만, 막상 부산 사람들의 삶의 형태는 이미 크게 변화되었다. 산업자본주의 경제 모델은 너무 낡고 이미 무너져버렸으며 가부장제적 가족 모델은 파산의 무게보다 더 무겁게 가족을 짓누른다. ‘우리가 남이가’의 세계는 지역 연고와 같이 오래된 권력관계에 기생하는 집단의 전유물이 되었다. 오래된 삶의 방식은 강고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은 인정되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않은 채 세대 갈등의 형식으로 폭발한다. 오래된 삶은 강고하고 완강한 고독 속에서, 새로운 삶은 인정받지 못한 원한 속에서 각자 저마다 고독한 삶을 마감하고 있다. 관계의 빈곤을 대면하고 새로운 관계성을 사회적·정치적으로 만들어나가지 않는 한, 불화 속에서 저마다 고독한 죽음에 직면하는 길 외에는 없다.

한국이 가족 중심주의라는 것은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가족 중심주의는 가족 바깥에 아무것도 없고 어떤 대안적 관계도 불가능한 사회라는 의미이다. 민가협, 유가협에서 세월호 유족까지 한국에서 재난과 국가 폭력에 휩쓸리면 유족이 오롯이 국가에 맞서, 국가를 대신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 국가 폭력의 역사적 장면 곳곳에는 유족 공동체의 역사 또한 새겨져 있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란 더는 유족 공동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와 가족 사이에 다른 대안들, 관계 형식들을 발명하고 새겨 넣어야만 삶과 관계의 민주주의는 비로소 시작된다. 가족과 국가 사이에서 다른 여럿의 관계와 함께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내는 일, 나는 이를 반려의 권리를 확립하는 일이라고 이미 명명한 바 있다.

1017 빈곤철폐 행동의 날, “빈곤철폐와 차별금지법 제정, 장애등급제 폐지와 장애인 활동 보조 권리, 탈시설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외침은 추운 서면 거리에 오래 울려 퍼졌다. “그래서, 투쟁!”이라던 반차별 활동가의 외침이 어떤 심오한 말보다 깊이 와닿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내 가족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동반자 등록법 촉구 청원이 진행 중이다. 불화 속에서 고독하게 죽지 않기 위한 투쟁,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실험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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