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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05 18:34 수정 : 2017.11.05 18:57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정치 구호도 가슴 떨리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1969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빌리 브란트가 내건 슬로건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민주주의를 감행하자!”(Demokratie wagen)

브란트는 이 선거에서 승리해 전후 최초로 정권 교체를 이뤘고, 정말로 ‘민주주의를 감행’했다. 민주주의가 과감하게 실험된 곳은 무엇보다도 학교와 일터와 언론이었다. 초·중·고 학교에서는 민주주의자를 길러내는 것이 최고의 교육목표가 되었고, 반권위주의 교육, 비판 교육, 저항권 교육 등 정치교육이 정착되었으며, 대학에서는 교수, 학생, 강사·조교가 총장 선출을 비롯한 모든 대학 운영에 3분의 1의 동등한 투표권을 갖고 참여하는 ‘3분할 원칙’이 법적으로 제도화됐고, 대학생의 생활비를 ‘연구보수’로서 지급하는 바푀크(BAf?G)가 도입되어 대학생의 경제적 해방이 이뤄졌다. 직장에서는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50%를 차지하는 ‘노사공동결정제’가 법제화되어 노동 민주화가 획기적으로 진전되었고, 언론계에는 68세대의 인재들이 대거 진출하여 권력 비판과 사회 민주화를 언론의 사명으로 삼는 새로운 언론문화의 기틀을 세웠다.

그 결과 독일은 과거청산, 복지국가, 동방정책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나라’가 되었고, 독일인은 성숙한 민주의식을 가진 신독일인으로 거듭났다. 브란트의 담대한 민주주의 실험이 서구 민주주의의 모범국 독일을 탄생시킨 것이다.

19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 거리에서, 교정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젊은 날을 보낸 우리 세대에게 민주주의는 ‘쟁취’의 대상이었지, ‘감행’의 대상은 아니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독재와 싸워서 되찾을 ‘제도’로 알았지, 일상의 삶을 변화시킬 ‘행위’로 생각지 못했다. 우리는 광장에선 민주주의의 투사였지만, 일상에선 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6·10항쟁 30주년 기념사에서 “정치와 일상이 민주주의로 이어질 때 우리의 삶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상에서 민주주의로 훈련될 때, 민주주의는 그 어떤 폭풍 앞에서도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옳은 말이다. ‘민주공화국다운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야 한다.

브란트의 독일에서처럼 삶의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감행하는 것이 우리의 당면과제다. 학교에서는 민주시민을 길러낼 정치교육을 제도화하고, 학생들의 정치활동을 권장하고 보장해야 한다. 대학은 지성의 전당으로서 성숙한 민주주의가 선취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총장직선제를 포함한 대학 민주화가 시급한 이유다. 노동 민주화의 핵심은 노사공동결정제의 도입이다. 노동 민주화가 경제성장의 초석이 되고, 경제위기 극복의 밑거름이 된 독일의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 언론 민주화는 초미의 관심사다. 공영방송은 ‘이명박근혜 야만시대’를 지탱해준 적극 협력자로서의 과거를 통렬히 반성하고, 민주주의가 실험되고 소통되는 공론장으로서 새로운 시대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촛불혁명의 구호가 “박근혜 퇴진!”이었다면, 1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구호는 “민주주의를 감행하자”가 돼야 한다. 학교에서, 일터에서 어디까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지 실험해보자. 삶의 현장을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공간으로 바꿔보자. 우리가 얼마나 성숙한 민주주의자인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숙한 민주사회인지 점검해보자. 그리하여 우리의 소중한 민주주의가 그 적들에 의해 유린되고 전복되는 비극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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