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20 18:25
수정 : 2017.11.20 19:15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까라는 질문에 관심이 쏠리고 빅데이터·환경·안전·돌봄 분야가 유망한 직종이라는 기사에 눈길이 가는 요즈음이다.
그러나 이게 좋은 질문은 아닌 것 같다. 앞으로 우리의 삶은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여러 일들의 꾸러미로 재구성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평생직장이 없을 거라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직장의 모습이 크게 달라질 것이며, 농사도 조금 짓고 단순한 가구도 만들고 블로그에 글과 사진도 올리는 일들을 두루 하면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다수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이 빼앗아갈 수 없는 인간의 일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더 나을 수 있겠다. 그것에 대한 대답은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인간의 본성에 가장 부합하는 활동이자 4차 산업혁명으로 늘어난 여가를 가장 값지게 선용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이되 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 이 영혼을 잘 가꿈으로써 신에 가깝게 다가가는 것, 곧 자신의 잠재적 가능성을 한껏 꽃피우고 실현하려는 것이 바로 인간이 살아가는 최고의 목적이다. 이때, 영혼을 가꿈으로써 나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 행위가 바로 지성의 덕과 품성의 덕을 쌓는 일이다. 지성의 덕은 세상의 이치를 아는 것으로, 배움을 통해 형성된다. 품성의 덕은 합리적 판단을 통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의 삶을 사는 것으로, 의식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곧 습관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배움과 익힘의 과정에는 함께할 수 있는 타인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타인과 이 과정을 함께하면서 제대로 배우고 익히며, 큰 즐거움도 얻게 된다. 마침내 그들은 서로 친구가 된다. 친구와 함께 배우고 익히는 삶의 좋음은 공자님도 이야기한 바 있다. 로마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은 ‘호모 에루디티오’(Homo Eruditio), 곧 학습인이다. 사람들이 배움과 익힘을 통해 큰 즐거움을 얻고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이라면,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활동은 일이 될 수 있다. 나도 좋지만, 타인에게도 유용한 무언가를 주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인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분의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처음에는 그 시간들이 무위와 도락으로 허비되더라도, 결국에는 함께 배우고 익히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행동에 대해 높은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인간의 고차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쪽으로 바뀔 것이다.
이때 배움과 가르침이 일어나는 공간의 모습은 가변적이다. 돈을 매개로 한 시장이 될 수도, 상호성과 호혜에 기초한 학당이 될 수도 있다. 각자가 무엇을 내놓고 어떤 것을 얻으려 할지에 따라, 우리 욕구의 어떠한 부분에 더 큰 의미를 둘지에 따라, 그 플랫폼은 다양한 모습을 띨 것이다.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건너가고 있을 수능 수험생들에게도 몇 마디. 곁에 친구가 함께했기에 그 시간들을 견뎠을 거야. 강요된 공부에서도 배우고 깨닫고 나누는 즐거움이 없지는 않았을 테지. 이제 앞으로 어디에 있더라도 “사물의 이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 아직 모르는 것과 알고 싶은 것, 앞으로 어떻게 하면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가 하는 방법”(미야베 미유키, <외딴집>)을 즐겁게 배우고 익히기를.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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