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27 17:55
수정 : 2017.11.27 19:08
정용주
염경초교 교사,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포항 지진으로 일주일 연기되었던 수능이 끝났다. 수능 연기로 인한 입시일정 조정, 여진 등 상황 발생 시 대응방침 등이 중앙재해대책 수준에서 준비되었다. 교육부총리가 수능 당일 직접 포항으로 내려가 상황을 관리하였고, 다행히 연기된 수능은 무사히 치러졌다. 이렇게 수능 일주일 연기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주요 선발 기제로서 입시의 강력한 영향력과 전국민적 관심이 다시 확인됐다.
많은 교사들과 교육학자들이 비판해왔듯이 한국은 모든 교육에서 입시가 중심이 된 사회다. 표준화된 시험에 의한 성적이 학교교육의 기준이 되고, 이런 교육을 통한 성취가 서열화된 대학 진학으로 이어져 사회적 지위 획득과 연결된다. 입시와 교육의 강한 연결관계는 교육을 통한 진리 탐구의 과정, 시민성의 함양, 자아실현과 같은 본질적 기능이 의미를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 특히 학교는 강력한 입시제도 속에서 직업 지위 획득에 영향을 미치는 선별기능을 제공해왔다. 이 점은 학교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가장 강력한 사회제도로 정착하게 한 핵심적인 요소였다.
그러나 사회환경의 변화로 학교교육이 수행해왔던 이러한 역할이 점점 퇴색되어가고 있다. 달리 말해 사회 불평등 구조가 악화되고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학교교육의 사회적 지위 이동 효과가 감소되었다. 더구나 장기 빈곤층이 확대되고, 저임금에 따른 빈곤율도 증가하고 있다. 더 배우고, 더 일하는데도 가난해지는 사회가 된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 학업 성취도로 학생의 사회적 지위를 예측할 수도, 안정적인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만들 수도 없게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능을 마친 학생들의 미래는 장밋빛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 기계와 인간이 함께 진화하는 미래, 창의적이고 융합적 사고와 통합적 지식이 활용되는 그런 장밋빛 미래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미래 자체가 위험과 불확실성으로 이해되고 있다. 창의성, 융합교육이 강조되는 이면에서 사회 불평등 구조가 악화되고 학교교육의 사회적 지위 이동 효과가 감소되는 현상을 이들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교사로서 겪는 문제는 이렇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학교 공부를 잘하면 성공한다는 이념이 작동하지 않을 때 학교는 학생들에게 배움에 대한 동기를 어떻게 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면에선 교육 가능성이 넓어질 수도 있다. 교육 전반의 입시화로 무엇이든 입시를 전제로 할 때만 의미를 갖는 시대가 끝나서다. 입시가 학교교육의 주요 목적이 되지 않을 때, 배우는 기쁨을 되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넓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교육을 통해 인간다운 인간을 길러내야 한다는 시각과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길러내야 한다는 시각은 하나로 통합돼야 바람직하다. 그래서 교육 내용과 방법의 혁신 못지않게 교육을 통해 얻는 좋은 일자리의 확실성, 장밋빛 미래도 중요하다.
수능을 치른 학생들의 앞날이 위험과 두려움에 기반한, 어떤 것도 안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미래라면 어떤가. 이러한 불안을 이용하는 흐름도 있다. 창의력, 융합적 사고, 의사소통 능력, 인성과 같은 요소를 또 다른 스펙으로 만들어 교육 그 자체의 기능이 악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반복하지만, 좋은 교육은 좋은 사회제도 속에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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