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12.28 18:16 수정 : 2017.12.28 19:06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지난 26일 “여성가족부(장관 정현백)는 2018년도 달라지는 제도를 여성·청소년·가족 분야별로 발표했다.” 2017년 12월 제작 배포된 정책 보도자료는 2017년 1월9일 배포된 여성가족부 업무 추진 계획과 놀랍도록 닮았다. 여성가족부의 ‘업무’를 “여성·청소년·가족 분야”로 할당하고, 할당된 정체성 그룹에 대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요약되는 업무 추진 계획은 2017년 1월에도, 2016년 1월에도, 2015년 1월에도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여성가족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는 이런 기조의 반복에 대해 최소한의 자의식도 찾아보기 어렵다. 혹자는 여성가족부가 “여성·청소년·가족 분야” 업무 기조를 반복하는 게 왜 문제냐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문화체육관광부가 12월7일 발표한 ‘문화비전 2030’은 과거 정부들의 문화비전 기조를 비판하면서 시작된다. 소수 전문가 집단의 폐쇄적 논의로 정책이 만들어지고 유관 업무 분야에 따라 나눠주기식으로 예산이 분배되면서 문화에 대한 비전을 상실했다는 것이 비판의 초점이다. ‘문화비전 2030’은 모호하긴 하지만 단절과 변화의 필요성을 선언하고 있다.

이에 비교해 여성가족부의 정책 기조에는 기존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단절의 시도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27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화해·치유재단’(이하 재단)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기념사업’에 대한 점검·조사 결과에도 드러난 것처럼 여성가족부 내의 적폐청산 문제도 매우 시급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아직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정책 기조 어디에도 적폐청산이나 과거 정권과 단절하려는 새로운 정책 비전은 찾아볼 수가 없다.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의 비전에서는 박근혜 정권이 시행한 1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 대해 “남성과 여성의 국민 체감도가 여전히 낮게 나타나는 등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라는 언급이 전부다.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비전은 “여성·청소년·가족 분야” 할당 업무를 다시 관련 부처별로 할당한 업무 추진 계획표와 지표로 채워졌다. 혁명은 못 해도 다른 부처만큼은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정현백 장관이 토로한 것처럼 “여성가족부가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다.” 정부 정책이 페미니즘 정치의 전부도 아니고, 모든 것을 단시일 내에 바꿀 수도 없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비전’, 기본 이념과 새로운 구상이 중요한 게 아닐까? 현재까지 나온 여성가족부의 정책 자료를 보면 이미 할 수 있는 일에 제한을 두고 몇몇 정책과 예산 수립에 목표를 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2018년 여성가족부 업무 계획에서 새로운 점은 위안부 기림 사업 예산이 19억원으로 증액된 것과 디지털 성폭력 근절 대책이 ‘추가’된 것이 대표적이다. 위안부 기림 사업은 2017년에도 여성가족부 핵심 업무였으나, 2018년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어떤 이념과 비전이 이전과 차이가 있는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것은 여타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본 이념이나 비전이 없이, 예산을 편성하고, 관계 기관에 예산을 주고 실행하는 것. 참으로 익숙한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사업 추진 체계 아닌가? 비전이 없다 보니 자기 내적 준거가 없이 상대편 논리나 실속에 따라 임의로 업무가 추진되는 체계, 그것이야말로 ‘12·28 합의’로 상징되는 적폐의 가장 핵심이다. 이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외교 논리, 일본의 태도도 중요하지만, 자기 내적 논리나 비전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여성가족부는 새로운 비전과 이념을 만들어야 한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