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2.31 18:48
수정 : 2018.01.01 13:53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한국 대학사의 최대 역설은 현대사의 역사적 고비마다 민주화의 선봉장이자 견인차였던 대학이 정작 자기 자신을 민주화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30년 군사독재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대학은 민주화되지 못했다. 정치적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민교협이 결성되고, 해직교수가 복직되고, 총장직선제가 일부 시행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대학 민주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여전히 국립대학은 정부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사립대학은 족벌사학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거기에 1990년대 중반부터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대학개혁은 대학을 통째로 자본과 기업의 손아귀에 쥐여주었다. 기업화된 대학은 군사독재하에서도 근근이 지켜낸 자신의 영혼마저 팔아넘겼다. 그렇게 대학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민주적이고 후진적인 조직으로 전락했다.
대학 민주주의의 퇴행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특히 재벌이 지배하는 사립대학이다. 중앙대의 경우는 재벌이 대학을 장악하면 대학 민주주의를 어디까지 파괴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사례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등장과 함께 중앙대를 ‘인수’한 두산 법인의 첫 조치는 대학 민주주의를 정면 부정하는 것이었다. 총장직선제를 총장지명제로 전격 개악한 것이다. 박용성 이사장은 “손목을 자르겠다”, “목을 쳐주겠다”는 등의 조야한 협박을 일삼으며 대학의 민주적 질서를 초토화했다. 학내 언론을 장악하여 조작과 검열을 자행하고, 교수들을 “강성 악질 노조”라고 비난하고, 댓글부대를 조직하여 비판적인 교수와 학생을 공격했다.
이런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 중앙대 법인은 지난 9년 동안 3천억원 규모의 대학 건축 공사를 모두 수의계약으로 두산건설에 몰아주었고, 중앙대는 사립대학 중 전국에서 부채 규모가 두번째로 큰 대학이 되었다.
2015년 박용성 이사장이 ‘대학판 조현아 사건’으로 물러난 뒤에도 두산의 독재적 지배 행태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지난 12월11일 교수들은 투표를 통해 77%가 총장을 불신임했고, 93%가 총장지명제에 반대했다. 그러나 바로 이틀 후 박용성 전 이사장의 동생인 박용현 이사장은 현 총장을 다시 임기 2년의 총장으로 지명해버렸다. 이는 공적 기관인 대학을 사유물로 여기고, ‘아랫것’인 대학교수의 의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오만한 재벌의 대학갑질의 전형이요, 대학 민주주의에 대한 야만적 폭거이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 대학의 적폐를 청산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이제 대학 민주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게 나라냐’라는 시민의 절규에 따랐듯이, ‘이게 대학이냐’라는 대학인의 분노에 응답해야 한다. 특히 과거 민교협의 창설 멤버로서 대학 민주화와 민주시민 양성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대학 민주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 모든 정책적 수단을 쏟아부어야 한다. 대학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중앙대 교수들에게 수십개 대학에서 연대와 지지 성명이 쇄도하는 이유를 깊이 헤아려야 한다.
2018년은 68혁명 50주년을 맞는 해이다. 68혁명은 대학에서 발화된 ‘대학혁명’이었고, 이것이 문화혁명, 사회혁명으로 이어져 오늘의 유럽을 만들었다. 우리가 빛나는 민주혁명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헬조선’에서 사는 것은 어쩌면 대학혁명, 즉 대학의 혁명적 민주화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부디 올해가 이 땅에서 진정한 대학 민주화가 시작되는 원년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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