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02 18:32
수정 : 2018.01.02 19:37
이원재
(재)여시재 기획이사, 경제평론가
‘초연결 지능화, 핀테크, 자율주행차 등 8대 핵심 선도사업을 키우겠다.’(2018년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 ‘전기/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가전, 에너지 신산업 등 5대 신산업 선도 프로젝트를 키우겠다.’(새 정부 산업정책 방향, 산업통상자원부) 최근 정부가 발표한 신산업 관련 정책들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데 정책의 문법은 산업화 시대에 머물러 있다.
우선 주어가 불명확하다. ‘자율주행차를 키우겠다’고 서술할 때, 정부가 자율주행차 사업을 한다는 이야기인지 민간기업이 한다는 이야기인지 알기 어렵다. 정부가 민간기업을 부하 직원처럼 부리던 과거 산업정책의 흔적이다. 정부 정책의 주어는 명확하게 국가라야 한다. 명백하게 시장에서 민간이 성취할 일을 정책 목표로 인식하면 곤란하다.
목적어도 혼란스럽다. 주어가 명확하게 국가라면, 목적어도 국가의 목적이라야 한다. 그렇다면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 성장’ 따위의 목적은 곤란하다. 그것은 시장의 목적, 산업의 목적은 될 수 있지만 국가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물론 지금이 1970년대라면, ‘잘살아보자’는 이야기가 정책 방향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일단 뭔가 만들어서 팔아야 한다. 그러니 신발도 만들고 옷도 만들고, 철강도 해보고 자동차도 해보고 조선업도 해보자. 이런 산업에는 막대한 지식과 자본이 필요한데, 기업은 그것을 동원할 만큼 크지 않다. 국가가 나서서 해보겠다.’
납득할 만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국가 주도 산업정책을 내놓았다. 지금이 2000년대라면, ‘새로운 기업을 일으켜보자’는 이야기가 정책 방향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재벌도 은행도 넘어가고 있다. 한편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나오면서 새로운 경제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국가가 나서서 인터넷과 벤처기업을 키우겠다.’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는 전국에 초고속인터넷망을 깔고 전 국민 인터넷 교육을 시키고 벤처기업 육성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금은 2018년이다. 한국은 경제 강국이다. 글로벌 기업도 여럿 있다. 경제규모 대비 정부 연구개발 예산 비중이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렇지만 기업 성장과 일자리의 연결고리는 끊어지고, 소득, 주거, 교육, 건강 등 풀어야 할 사회문제는 줄을 서 있다. ‘국가가 기업을 지원해서 규모를 키워 잘살아보겠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경제성장이 지상 목표이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 국가의 목적은 달라야 한다. 예를 들자면, 국가가 자율주행차를 선도산업으로 키워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약자들의 이동 문제와 도시의 주차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적을 내거는 게 낫다.
기업 규제 완화는 박근혜 정부 때도, 이명박 정부 때도 목표였지만 실패했다. 지금은 국가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할 때, 그 결과로 기업도 성장하게 되는 시대라는 점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구글과 애플 같은 기업이 미국에서 탄생한 이유는 미국의 산업정책이 아니라, 국방기술정책에 있다.
기술정책의 목적어를 바꿔야 한다. 기업 성장이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이 국가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사회문제를 발굴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 일과, 기술과 기업을 그 일에 투입하는 일이 함께 가야 정책의 문법이 바로잡힌다. 마침 이번 정부에는 각각을 맡은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실과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있다. 그들의 긴밀한 협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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