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14 20:54
수정 : 2018.01.14 21:02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오랜만의 남북교류다. 북한의 예술단이 오고 응원단이 온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문화교류의 시간이다. 경기장에서도 다양한 교류가 이루어질 것이다. 다행스럽게 제재 때문에 교류가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의 평화공세를 경계한다. 교류의 현장에서는 남남갈등이 예상되고, 교류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각도 우호적이지 않다.
지금은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서 한반도 팀이 중국을 꺾고 우승해서 가슴 뭉클했던 1990년대 초가 아니다. 그때는 처음이라 서로 조심했다. 지금은 갈등하면서도 차이를 인정하고 어울렸던 2000년대도 아니다. 오랜 적대가 낳은 혐오의 바다 위에 교류의 배가 뜬다. 핵 문제가 만들어낸 위기의 벌판에서 만남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교류의 문을 별 탈 없이 통과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남북교류는 언제나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드러낸다. 오랜만에 재개되는 교류이기에 더 심할 것이다. 아마도 보수단체가 인공기를 태우고 북한의 지도자를 모욕하고, 그때마다 북한 대표단은 자주 짐을 싸고 철수를 통보하는 과거가 재연될 수 있다. 혹은 텔레비전에 나온 전문가의 발언을 문제 삼아 사과를 요구하고 회담을 중단할 수도 있다. 남북관계 악화의 시기에 만들어진 적대의 관성 때문에, 시민들은 ‘북한 체제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오직 북풍으로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평창의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참여로 평창의 의미가 달라졌다. 평창의 성공을 위해서는 남북교류의 갈등을 성숙하고 지혜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 과연 우리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어떤 한반도를 보여줄 것인가? 냉전의 과거가 아니라, 화해하고 협력하는 미래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에게 평창은 또한 평화의 문이다. 언제나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만큼 한국 외교의 위상과 역할이 주어진다. 교류의 갈등으로 기회를 날릴 수 없다.
교류의 소란한 입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초당적 협력이다. 올림픽 휴전은 남북관계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이웃이 방문하면 웃듯이, 올림픽 기간만이라도 국내정치의 휴전이 필요하다. 북풍으로 정치적 이득을 볼 생각을 잠시만이라도 내려놓으면 좋겠다. 정부와 여당도 보수야당에 정당 외교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과감하게 줘야 한다. 평창의 성공을 위한 정당 간 협약을 추진하면 좋겠다. 우리도 한번쯤 ‘책임 공동체’를 만들어보면 정말 좋겠다.
두번째는 민주주의의 힘이다. 일년 전 광장에서 보수단체들이 광화문광장의 군중 사이로 들어온 장면이 생각난다. 그들은 충돌을 원했지만, 촛불 시민들은 충돌하지 않았다. 그 대신 거대한 화음으로 소음을 잠재웠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수단체의 표현의 자유를 봉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소음을 화음으로 변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구촌 사람들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가장 매력적으로 평가한다. 우리의 확실한 매력 자산인 민주주의로 남북교류의 잡음을 화음으로 연주해보자.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상반되고, 남북교류를 바라보는 의견은 다양하다. 다만 교류를 두려워 마라. 우리는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 불편하다고 교류를 피할 수 없다. 교류는 만남이고, 주고받고 충돌하다가 화해하고 또 충돌한다. 그러면서 오해가 이해로 점차 변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 접촉을 해야 변화할 수 있다. 가야 할 길이 멀기에, 교류를 두려워할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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