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17 18:08
수정 : 2018.01.17 19:14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중국에 대한 국내 언론의 관심은 한동안 ‘위협’과 ‘괴물’ 사이를 표류해왔다. 사드 배치로 한국 경제에 수류탄을 던진 나라도 중국이고, 십대 소년이 아이폰을 구매하려고 장기를 팔았다는 나라도 중국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미디어의 구애를 단숨에 받은 현상이 있다. 바로 중국의 창업 열풍이다.
지난주 주요 일간지들은 중국의 창업 동향에 관한 한국은행 보고서를 소개하면서 “하루 창업 1만6500개” “창업에서도 밀리는 한국” 등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쏟아냈다. 신생 기업 취업자 수, 투자 규모, 정부 지원 등 여러 지표를 볼 때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의 모범으로 손색이 없다는 게 주요 골자다. 특히 나의 조사 지역인 선전(深?)은 상하이, 베이징과 더불어 창업 열풍의 메카로 급부상하면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홍콩과 마주한 작은 어촌이 개혁개방을 견인할 특구로 지정되었을 때, 1200만 인구를 가진 메트로폴리스의 풍광을 예견한 사람들은 드물었을 것이다. 제조업과 기술혁신을 결합한 “동방의 실리콘밸리”는 이제 ‘4차 산업혁명’ 업계 인사들의 대표적인 방문지가 되었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 대한 질책을 여지없이 쏟아낸다. (알리바바의 마윈과 같은) 영웅의 출현을 막는 한국인들의 ‘반기업’ 정서, 모험을 외면하고 공무원 시험에 목매는 청년들, 성장 동력을 외면한 채 ‘규제 완장’이나 휘두르는 정부가 주로 심판대에 오른다.
새겨볼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가을 나 역시 선전의 창업단지를 둘러보며 그 활기에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은 청년들이 꾸는 꿈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꿈, 자신의 일이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중국,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거침없이 얘기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근래 한국에서 거의 마주하지 못한 낙관의 미소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런 청년들 역시 “공상국에 1년간 등록된 스타트업은 3퍼센트 미만, 3년간 등록된 스타트업은 1퍼센트 미만에 불과하다”며 과장된 통계를 간단히 비웃는다. 다양한 이유로 폐업을 미룬 채 ‘좀비’가 된 기업 역시 신생 기업 못지않게 많다는 것이다. 국내 언론이 “중국 청년들의 꿈은 기업인”이라며 한국 청년들을 책망할 때, “나라에서 투기를 조장한다” “마윈이 성장했던 시대의 중국과 지금은 다르다” “누구나 성공 스토리만 떠들고 있다”는 비판 또한 중국 사회에서 심심찮게 등장한다.
실패 사례를 빈번히 접하는 청년들은 창업도 하나의 ‘직종’(工種)일 뿐이라며 평상심을 갖자고 서로를 다독이기도 한다. 더구나 한국이든 중국이든 아이디어가 투자할 만한 상품이 되기까지의 불확실한 여정을 청년들 누구나 감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줄곧 앱 개발에 매달렸던 지인은 선전대 졸업 후에도 투자자를 찾아다녔지만 “더는 안 되겠다”며 짐을 쌌다. 창업 과정에서 배운 디자인 기술로 근근이 알바를 했지만 농촌에서 자신만 바라보는 부모님께 면목이 없다는 이유였다.
역사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중국은 여전히 공유하는 게 많다. 고등교육이 국가경쟁력이라며 우후죽순 대학을 만들었고, 성장이 고용과 무관해진 시대가 되면서 고학력 ‘백수’ 집단을 양산했다. 그리고 위기를 호기로 바꿀 마법을 창업과 혁신에서 찾았다. 하지만 이는 누군가에게는 할 만해도 모두에게 강요할 수 있는 처방은 아니다. 자기가 받은 교육만으로 괜찮게 살아갈 만한 사회는 불가능한가? 왜 꼭 ‘더’ ‘새롭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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