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21 17:12
수정 : 2018.01.21 18:59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한해 줄곧 북한에 험한 말을 쏟아냈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거듭될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폭탄’은 상승곡선을 그렸고, 한반도는 ‘전쟁위기설’로 뒤숭숭했다. 2018년 새해 벽두에도 “내 핵단추가 더 크고 강하다”고 북한 신년사에 응수하는 것을 보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압박이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20여일이 지난 오늘 ‘한반도 위기설’은 어느새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2월9일 시작되는 평창올림픽에 한반도기를 들고 남북이 함께 입장한다.
선제타격을 포함, 북한에 강경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달라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과 한 통화에서 “남북대화를 100% 지지한다”고 했고, 10일 통화에서는 “남북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대북 군사적 행동은 없다”고 했다. ‘귀를 의심’할 만한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말들은 트위터가 아닌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나왔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 변화는 그동안 문 대통령이 기울인 노력의 결과요, 한-미 정상의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문 대통령은 무주 세계태권도대회 개막식에서 북한에 평창올림픽 참가를 권유했다. 그러나 북한은 “스포츠 위에 정치 있다”는 말로 사실상 거부했다. 후보 시절부터 평창올림픽을 남북관계 복원의 전기로 삼으려 했던 문 대통령은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유도할 여건을 만들기 위해, 특히 북한에 메시지가 될 수 있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변화시키기 위해 참모들과 함께 끈질기게 노력해온 것 같다.
그 결과 지난 12월19일 한-미 연합 군사훈련 ‘연기’라는 운을 뗄 수 있었고, 마침내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결심을 끌어낼 수 있었다. 한편 보수진영은 ‘핵단추’ 운운과 함께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대화를 제의한 북한의 변화에 대해 ‘북한의 위장 평화공세가 시작됐다’거나 ‘북한이 우리를 상대로 또 사기를 친다’고 현재의 상황을 경계한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의 올해 신년사는 과거와 결이 달랐다. ‘핵단추’ 발언으로 우리 국민의 대북 정서를 악화시키기는 했지만 방점은 경제발전 쪽에 찍혀 있었다. 특히 대남 관련 부분은 예년에 비해 구체적이었다. 또 평창올림픽을 언급하면서 시급히 만나자는 제안도 했다. 이는 미국에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요청할 정도로 ‘한반도 운전자’가 된 문 대통령의 힘을 빌려 북-미 관계도 개선해보려는 김정은 위원장의 포석으로 보인다. 지난 17일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평양에 갈 수도 있다고 했다. ‘핵실험 동결’을 조건으로 제시하긴 했지만 이는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를 고려한 조처로 보이고, ‘중단’의 전단계로 ‘동결’을 제시한 것 같다.
한-미가 연합군사훈련을 ‘연기’한 만큼 김정은 위원장도 ‘연기’에 상응하는 ‘동결’ 신호를 이제 미국에 보내야 할 것이다. 물론 북-미 관계 개선 가능성은 기본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협조하는 만큼 비례해 커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평창올림픽 참가 기간 중은 물론이고 올림픽 이후에도 고위급회담, 군사회담, 적십자회담 등 각종 각급의 남북대화를 진지하게 지휘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에 협조하기 바란다. 나아가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성사시키기 바란다. 올림픽 이후 다른 핑계를 대면서 핵·미사일 활동을 재개한다면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 유보조건인 남북대화 지속은 어려워진다. 남북대화 지속이 불가능해지면 결국 북한에 불리한 대내외적 상황만 조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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