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23 18:26
수정 : 2018.01.23 19:01
이원재
(재)여시재 기획이사, 경제평론가
‘20~30대가 성공할 희망이 없어 불로소득을 노리는 암호화폐 투기에 빠져들었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열풍에 대한 흔한 설명이다. 계층이동 사다리가 사라진 탓에 젊은층이 ‘투기 세대’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나는 공감하기 어렵다. 기성세대 역시 투기 세대이기 때문이다. 상당수는 투기와 불로소득으로 재산을 형성했다. 그들에게는 암호화폐 대신 아파트가 있었다.
20대에 4·19혁명을 겪은 세대는 여의도와 강남 개발로 재산을 형성했다. 20대에 유신을 겪은 세대는 경기 과천과 서울 개포동, 목동, 상계동 개발 수혜자가 됐다. 386세대는 강남과 신시가지 아파트값이 3~4년 만에 두세 배씩 뛰는 모습을 목격하며, 분당 일산 평촌 등의 신도시를 기반으로 중산층이 됐다. 싸게 분양받아 비싸게 팔면서 재산을 만들었고, 더 좋은 곳으로 이사 다니며 재산을 불렸다. 국가가 거품을 만들어 나누어주는 꼴이었다.
기성세대 모두에게 아파트는 계층상승 사다리이고 분배제도였다. 월급으로 이룰 수 없는 중산층의 꿈을 이루게 해줬고, 수출 제조업 중심 고도성장의 과실이 흘러내려오는 낙수였다. 아파트 한 칸 차지하지 못한 이들은 뒤처졌다.
투기공화국의 이런 역사가 엄연히 있는데, 다음 세대에게 그저 ‘투기를 중단하라’고 말하는 게 정당할까? 최소한의 정당성을 얻으려면 투기사회의 고리부터 단호하게 끊어야 한다. 그 시작은 부동산 투기를 막는 일이어야 한다.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 최선의 정책은 과세와 재분배다. 투기로 형성된 부는 사회에 골고루 나누어 주거 안정에 투입하는 것이 최선이다. 사람들의 투기심을 없애기는 어렵겠지만, 투기가 계층사다리가 되고 소득분배 제도가 되는 사회를 끝낼 수는 있다.
다주택자를, 투기자를 잡겠다는 엄포만으로는 당장 집값 안정 효과도 낮을뿐더러 의미도 작다.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지금 가장 유력한 방법은 부동산 보유세, 즉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를 높이는 것이다.
2013년 서울 주택 기준으로 보면, 보유세 실효세율은 0.12%다. 미국 도심지역 주택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실제 시장가격의 60~70%밖에 되지 않는 공시지가 기준으로 보유세를 매긴다. 게다가 역진성도 커서, 비싼 주택일수록 시장가격 대비 재산세가 낮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다.
보유세를 못 내겠다고 하는 이들은, 집을 팔면 그만이다. 그런 사람들을 정부가 도울 방법도 있다. 역모기지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도 된다. 정부가 매입해주고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해도 된다.
암호화폐 투기의 결과로 얻은 이익은 엄정하게 세금을 매겨야 한다. 주식에 적용하지 못했던 시세차익에 대한 과세나 자산 관련 과세도 생각해볼 수 있다. 실명화와 거래내역 투명화는 당연하다. 거래를 막거나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불로소득을 정당하게 재분배하기 위한 대책은 정당하다.
하지만 더 큰 투기의 원천인 부동산을 내버려두고 펼치는 투기근절 대책은 효과를 보기 어렵다. 투기사회가 이어지는 한 사람들은 투기 대상을 계속 찾아낼 것이다. 젊은층만 해도 주식에서 갭투자로, 다시 암호화폐로 이동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정부는 국민들에게 빚내서 집 사지 말라고 말했다. 10년이 훌쩍 넘은 일이다. 그 약속을 믿은 사람들이 성공해야 하지만, 지금까지는 판판이 실패했다. 정부를 믿고 투기하지 않는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실패하고, 무시하고 투기에 나선 사람들이 성공한다면, 정부가 거짓말을 한 셈이다. 암호화폐든 뭐든 다음 투기방지 정책이 믿음을 얻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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