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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28 18:00 수정 : 2018.01.28 18:56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헨리, 나는 자네에게 조언을 구하러 온 게 아니라 통보하러 왔다네. 이 일을 해내고야 말 걸세.”

빌리 브란트 정부의 특무장관 에곤 바르는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 소련과의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미국 쪽 파트너인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을 만나 서독의 입장을 허심히 털어놓고 이해를 구했다. 그러나 키신저가 강한 우려를 표명하자, 바르는 물러서지 않고 자기주장을 펼친 것이다. 1945년 이후 사반세기 동안 지속된 냉전의 질서를 깨고 해빙의 시대를 연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브란트 총리가 미국에 대해 보인 용기는 참으로 놀랍다. 알다시피 당시 서독은 ‘점령지’와 다름없을 정도로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었다.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자 냉전의 최전선 국가로서 외교적 자주권은 제한적이었고, 세계 최대의 미군 주둔지가 있는 나라로서 군사적 종속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서독은 경제적 거인이었지만 ‘정치적 난쟁이’였다. 이런 ‘난쟁이 나라’의 총리가 ‘거인들의 질서’를 뒤엎고 나선 것이다. 브란트는 당당하면서도 솔직한 태도로 동·서독 화해, 유럽 통합, 세계 평화로 이어지는 자신의 구상을 우방에 설득했고, 마침내 동방정책에 회의적이던 닉슨과 퐁피두를 지지자로 돌려놓았다.

문재인 정부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보다도 정치적 군사적 약자도 보편이성과 도덕적 권위에 기대어 새로운 상황을 만들고 주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브란트 정부가 강고한 냉전체제를 ‘브란트 독트린’(동방정책)으로 와해시킨 것처럼, 문재인 정부도 동북아에 새로이 형성된 신냉전질서를 인류 보편적 도덕과 이성에 기초한 ‘문재인 독트린’을 통해 평화의 질서로 전환시켜야 한다. 더 이상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주의와 패권주의의 들러리를 서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 외교의 기본원칙을 세계를 향해 천명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독트린’은 평화가 통일보다 우선하고, 한반도 평화를 바탕으로 동북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지향하며, 어떤 경우에도 전쟁에 반대한다는 원칙을 담은 ‘평화 독트린’이어야 한다. 문재인 독트린이 시급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위기 상황 때문이다. 지금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서, 평창올림픽 이후 한반도 전쟁 위기설은 현재진행형이다. 핵과학자들은 한반도 핵 위기를 근거로 ‘지구종말시계’를 ‘2분 전’으로 앞당겨놓았다. 또한 냉전시대의 유령과 작별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외교원칙의 천명이 필요하다. 시대착오적인 냉전의식에서 벗어나 탈냉전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새로운 평화질서를 지향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신질서 구축에 주도적으로 나설 도덕적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 중 문재인 정부보다 더 강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정부는 없다. 미국은 대중 민주주의의 파국을 처연하게 보여주고 있고, 중국은 민주주의 부활의 가능성이 소멸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마피아 민주주의’나 일본의 ‘봉건 민주주의’도 근대 민주주의의 이념과 한참 거리가 멀다. 촛불혁명의 후예로서 문재인 정부는 한국 민주주의의 높아진 국제적 위상을 한껏 활용해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김정은의 핵폭탄이나 트럼프의 말폭탄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무소신과 무력감이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식민지도, 점령지도, 종속국도 아니다. 진정한 자주독립 국가로서 우리의 국가이익과 민족이성에 합치하는 외교원칙을 당당하게 표명해야 한다. 지금이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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