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29 18:07
수정 : 2018.01.30 13:45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소득 불평등의 심화와 노동소득 분배율의 하락, 투자와 생산성 상승의 둔화.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경제문제들이다. 이 문제들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 있다면 귀가 솔깃한 일일 텐데, 바로 그 요인으로 지대가 주목받고 있다.
경제적 지대란 부동산과 같이 생산요소의 공급이 제한되거나 가격에 대해 탄력적이지 않아서 공급자가 기회비용보다 더 크게 얻는 수입을 말하는데, 독점으로 인한 초과이윤 등을 포함한다. 최근의 경제학 연구들은 이 지대의 증가가 경제에 미친 악영향들에 관해 보고한다. 예를 들어 오바마 정부의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제이슨 퍼먼이 2015년 발표한 논문은 기업 차원의 경쟁 약화가 불평등 심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1997년 이후 미국의 많은 산업들에서 집중도가 높아졌고, 수익률 상위 10% 기업들의 수익률이 크게 높아져 기업들 사이의 격차가 커졌다. 문제는 임금 불평등이 기업들 사이의 이러한 격차와 관계가 크다는 것이다. 다른 실증연구들은 시장 집중도가 높은 산업에서 노동소득 분배율도 더욱 뚜렷하게 하락했다고 보고한다. 이와 함께 새로운 기업들의 진입과 노동 이동도 둔화되어 경제의 역동성은 약화되었다.
독과점의 심화 외에도 지대의 원천은 여러 가지다. 미국에서도 부동산 가격과 전통적인 지대인 임대료가 높아져 자본소득의 증가에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스티글리츠 등의 여러 경제학자들은 효율성과 무관하게 크게 늘어난 금융부문의 수익도 주로 지대에 기초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과도하게 늘어난 직업면허도 지대를 만들어내는데, 미국에서 면허가 필요한 직업의 비중은 1950년대 약 5%에서 현재는 약 25%까지 높아졌다.
나아가 지식재산권이나, 상위 1% 최고경영자나 고소득층 전문가들의 엄청난 수입도 지대의 일종으로 생각될 수 있다. 이러한 독과점의 심화와 지대의 증가는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혁신과 투자를 정체시켜 성장을 가로막는다. 따라서 많은 이들은 기득권과 관련이 있는 비생산적인 지대를 억누르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정치적 노력과 정책들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 그대로 가져와도 잘 들어맞는 이야기다. 한국도 상위 3개 기업의 점유율인 품목시장 집중도가 2005년 59%에서 2013년 약 68%로 높아졌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집중도는 국제적으로 높고 집중도의 심화가 노동소득 분배율 하락의 중요한 요인이다. 또한 대기업의 시장지배력은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 행위의 기반이며, 우리도 어떤 기업에서 일하느냐가 소득과 불평등을 좌우한다.
한편 부동산은 소유의 집중과 가격 상승으로 인해 지대와 불로소득의 가장 큰 원천인데도 제대로 된 과세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진보세력도 기득권과 지대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 노조는 재벌과 담합하여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기득권이 되었고 공공부문도 일종의 지대를 누리고 있다는 아픈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한국 경제의 여러 문제들도 지대의 증가와 관련이 작지 않을 것이다.
최근 보수파는 문재인 정부의 시장개입 정책이 역풍을 맞고 있으며 경제정책이 왼쪽으로 달려가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물론 시장을 잘 이해하고 더욱 정교한 정책을 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시장경제를 위해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정부 개입이냐 아니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기득권과 지대를 혁파하는 일이다. 지대를 깨고 공정한 경제를 만드는 일은 좌우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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