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28 18:16
수정 : 2018.03.28 19:31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변호한다. 나는 그의 사생활을 알지 못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 있었던 일도 모두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대통령 취임 후 그가 보여준 대북 행보는 비합리적이지도 않았고 충동적이지도 않았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듯 ‘전쟁광’도 아니었다. 그는 전적으로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대통령이다.
마이클 필즈버리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센터장이 맞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공식, 비공식 말과 트위터 메시지를 정리하고 있지만, 어디에도 먼저 북한을 공격한다는 말이 없다.” 북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확보하기 전에 군사력으로 제거하겠다는 ‘예방전쟁’은 트럼프 정부의 전략이 아니다. 북이 공격하기 직전에 먼저 선제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선제타격’이나 ‘코피 작전’은 당연히 미 국방부가 테이블 위에 놓고 있는 여러 옵션 중 하나이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선제공격을 운운한 적은 없다. 예방전쟁을 국가전략으로 채택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는 완전히 다르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방지, 억제, 교란, 격퇴를 국가안보의 주요 수단으로 명시했지만 선제타격이나 예방전쟁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발언은 무엇이냐고?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는 중요한 조건절이 있었다. “우리가 미국이나 동맹국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북한이 미국이나 한국, 또는 일본을 먼저 공격한다면 철저하게 보복하겠다, 그러니 도발하지 말라는 경고를 발한 것이다. 전형적인 억제정책 천명이다. 실제로 올 2월 미 국방부가 발간한 핵태세 검토보고서도 거의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이나 동맹국 및 파트너를 상대로 한 북한의 핵공격은 용납할 수 없는 일로, 이 같은 일이 벌어질 경우 북한 정권을 끝내겠다.” 이 보고서가 밝힌 것과 같이 “미국의 억제전략은 분명”한 것이다.
물론 억제가 전부는 아니다. 작년 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도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과거에 부시 행정부가 이를 내세워 북과의 합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의문이 생긴다. 트럼프 정부도 불가능한 요구를 내세워 협상을 파탄시키려는 것인가? 하지만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브리핑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신축적인 입장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보인다. “항구적인 비핵화 달성”을 위해 북-미 회담을 하겠다고 했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미 정상회담을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정의용 실장이 워싱턴에서 발표한 브리핑에는 서울에서 발표한 것과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음” “북한이 향후 어떠한 핵 또는 미사일 실험도 자제할 것”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가능한 한 조기에 만나고 싶다”고만 발표하고 조건절이 모두 빠져 있다. 이에 비해 서울 발표문에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비핵화할 것이고,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핵 및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고,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만나겠다고 되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조건절들을 이해하고 있는지, 실종된 조건절을 채워 넣을 방안이 있는지, 핵심적 의제들은 여전히 우려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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