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30 18:09
수정 : 2018.05.30 19:33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연구소 소장
소년이 열다섯 짧은 삶을 마감한 날은 7월2일이다. 1987년 12월부터 한달 남짓 온도계 공장에서 일한 그는 발작을 할 정도로 큰 병을 얻었고, 이듬해 3월부터는 병원에 입원할 지경이 되었다. 전문가들도 책으로만 보던, 현실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급성 수은 중독이었다. 지금은 역사로 남은 문송면의 마지막 생애가 이랬다.
딱 30년 전 이맘때는 문송면과 그의 병이 ‘사회화’되던 시기다. 회사와 노동부가 산재 인정을 거부하는 사이 노동자, 의료인,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이 사건을 알렸고 사회운동을 조직했다. 노동부는 사회문제가 되고 여론이 나빠진 후에 뒤늦게 산재로 인정했지만 이미 늦었다. 보름도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으니 돌이킬 수 없었다.
그 죽음을 기억하자고 얼마 전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조직위원회’가 발족했다. 마땅히 모두가 함께할 일이라 생각하며, 기획하고 일을 맡은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내친김에 ‘송면이의 친구 배지’ 프로젝트를 통해 기금 마련에 참여할 수 있다는 소식도 알리고 싶다. 이 위원회와 프로젝트는 인터넷을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추모의 뜻은 두가지다. 우리가 누리는 삶의 토대를 만든 사회적 죽음에 예의를 차리는 것이 첫째지만,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현재에 개입하는 형식이라는 뜻 또한 가볍지 않다. 문송면과 원진노동자의 죽음이 모양만 바꿔 되풀이되고 지속되는 탓이니, 지금도 스러지고 상하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산재 사망이 반복되는 현실을 바꿔내자”는 조직위원회의 제안도 그런 뜻이리라.
문송면의 수은 중독이 재현된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광주의 한 형광등 공장에서 생긴 수은 중독이나 휴대전화 부품 공장에서 여러 노동자가 메탄올에 노출되어 실명한 사건을 기억하는지? 채 몇년도 지나지 않은 현재적 사건이다. 300명이 넘는 피해자에 1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삼성 반도체의 직업병도 빼놓을 수 없다. 회사의 태도와 다툼, 그리고 산재 인정까지 30년 전과 흡사하다.
다른 시대의 양상이 동시대에 공존하는 것,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말은 노동자 건강의 현실에도 그대로 어울린다. 추락과 폭발, 수은이나 메탄올 같은 전통적 위험이 지속되는 한편, 이른바 긱 이코노미와 플랫폼 경제가 불러온 새로운 위험까지 폭증했다. 배달원, 택배 노동자, 시간제 노동자, 야간 근무와 장시간 노동의 위험은 문송면이나 원진노동자와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안전시설을 의무화하고 작업 환경을 측정하는 일은 부분일 뿐, 산재와 직업병은 새로운 노동과 고용 패러다임에 맞추어 변화하는 중이다. 사고와 재해를 넘어 건강 보호와 증진으로, 적극적으로는 장기 지속형 위험까지 포함한다. 새로운 위험으로는 낮은 임금과 소득, 불안한 고용, 무엇보다 불평등이 중요하다. 이는 건강을 해치고 수명을 줄이는, 저 유명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들로, 소득이 같아도 불평등은 그 자체로 건강에 불리하다는 ‘정설’을 특별히 강조한다.
문송면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자의 의무는 일하는 사람의 건강을 어떻게 보호할지, 위험을 어떻게 통제할지 묻는 것이다. 소득을 비롯한 사회적 요인도 당연히 포함된다면, 마침 논란거리인 최저임금에 한마디를 보태자.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는 어떤 기준으로 정하나? 나는 노동하는 사람이 건강을 유지, 보호할 수 있는 수준이 첫째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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