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6.24 18:17
수정 : 2018.06.25 16:35
김유익
다문화 ‘생활’ 통역
잦은 출장으로 절반 이상은 ‘외유’ 상태에 머물렀지만 2000년대 싱가포르에 3년쯤 거주하면서, 남국 생활을 만끽했다. 당시에는 현지인들의 삶에서 문화 다양성을 관찰하고 상상을 곁들여 이해해보는 것이 취미였는데, 처음엔 그 다채로움에 거의 환희를 느낄 지경이었다.
네 가지 공식 언어는 그렇다 치고, 이들의 공공주택 아파트단지인 주택개발청(HDB)이 제공하는 커뮤니티의 어느 지역을 가도, 우리의 먹자골목 같은 ‘호커센터’에서도 인도, 중국, 말레이시아 음식이나 간단한 서구식 스낵을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었다. 그 주위에 성당, 교회, 불당, 회교 사원, 힌두교 사원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또, 금융기업이나 첨단 기술기업이 즐비한 고층빌딩 업무지역에서 30분만 지하철로 퇴근하면, 리조트를 방불케 하는 콘도의 옥외 수영장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뉴욕과 하와이 같은 곳의 거리가 30분이라니.
그런데 오래지 않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보니, 이런 풍경이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지인 동료들에게 질문 공세를 펼친 끝에, 이 ‘인공 낙원’은 엘리트 관료들이 만들어낸 ‘소셜 엔지니어링’의 눈부신 성과라는 답변을 얻었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어디를 가도 눈에 띄는 매우 친절하고 상세한, 혹은 벌금 액수만큼 엄격한 안내 표지판들이었는데, 어느 순간 신기하게도 그 메시지가 환청으로 들려왔다. “아버지 말씀만 잘 들으면 돼.” 미니스터 멘토(Minister Mentor) 리콴유는 이미 세상을 뜨고 없었지만, 그의 아들인 프라임 미니스터(Prime Minister) 리셴룽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곳곳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북-미 회담에 온 김정은이 깜짝 시찰에 나서며, 싱가포르의 발전을 배우겠다 했을 때, 나는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다.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가부장제 국가, 창업자 후손들이 서로 배우며 성장하겠다는데 자본주의, 공산주의 정도 차이가 대수랴. 김정은과 함께 ‘은하계 최고의 마초’ 트럼프가 주역을 맡고, ‘동방의 군자’ 문재인 대통령이 조화롭게 이 세기의 무대를 연출하고 있으니 실로 가부장에 의한, 인민을 위한, 가부장의 정치가 아닐 수 없다. ‘진보 마초’라 비판받아온 김어준씨가 이를 생중계하며 두는 훈수가 흥미진진한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전후야 어찌됐든, 우리 대다수는 두 손 모아, 제발 트럼프는 변덕 부리지 말고, 아베는 ‘겐세이’(견제) 중단하고, 시황제는 밥숟가락 그만 얹으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설사 무사히 종전선언, 평화협정, 북-미 수교가 착착 진행되고 북한 비핵화를 달성한다 한들, 여전히 정치가 이들 가부장의 전유물로 남아도 될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얼마 전 지방선거에선 한반도를 블루로 물들인 민주당 ‘아재 원팀’의 한쪽에서 녹색당 신지예, 고은영 두 후보의 선전이 인상 깊었다. 특히 신지예 후보는 페미니스트 서울 시장이라는 구호를 내건 탓에 증오 범죄의 타깃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페미니즘 정치 의제화에 적으나마 성공했다.
그래서 10년 내에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나 도백이 탄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을까? 가부장제 정치가 자초한, 100년도 넘은 근대화의 질곡을 끝내고 여성, 청년, 노인, 성소수자, 탈북자, 이주노동자, 난민도 이곳 한반도에서 인간답고 평등하게,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하게 살아가는 정치를 펼쳐보는 상상이, 평화협정 성공 기원만큼 값어치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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