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7.11 19:49
수정 : 2018.07.12 09:35
김현경
문화인류학자
대학 입시와 관련된 기사에는 종종 다음과 같은 댓글이 붙는다. ‘한국 사회는 너도나도 대학에 가려고 해서 문제다. 대학은 학문을 연구할 사람만 가고, 나머지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이런 댓글에는 으레 미국과 한국의 비교가 따른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먹고살 수 있다. 미국인들은 우리처럼 대학 졸업장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이 글의 독자 중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꽤 될 것이다. 그런 독자를 위해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하려 한다. 하나는 미국인들도 우리 못지않게 대학 졸업장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사실 ‘대졸자 프리미엄’은 미국이 우리보다 더 크다. 고졸자의 평균 임금을 100으로 놓을 때 한국은 대졸자의 평균 임금이 141인데, 미국은 174나 된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5). 그런데도 미국인들의 대학 진학률이 낮은 이유는 등록금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미국에서도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들은 점점 더 직업을 얻고 가정을 꾸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들은 이혼할 확률이나 감옥에 갈 확률도 더 높다. 4차 산업혁명은 이들의 처지를 더욱 불리하게 만들 전망이다. 3차 산업혁명이 주로 중간 기술, 중간 소득의 일자리를 없애서 일자리 양극화를 가져왔다면, 4차 산업혁명의 타격은 시급 20달러 이하의 저숙련, 저학력 노동자들에게 집중될 거라고 한다(프레이와 오즈번의 보고서 참조).
오바마 행정부가 모든 미국인들에게 적어도 2년간 대학교육을 받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커뮤니티 칼리지를 무료로 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한 것은 이러한 상황인식에서였다.
이런 큰 흐름에 비추어 보면, 현재 진행되는 교육개혁 논의는 너무 근시안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중학교 3학년 아이들에게 실업계와 인문계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진로 결정의 시기를 늦출수록 학생들의 성취도가 더 높아지고 사회가 더 평등해진다는 것이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무엇보다 실업계 고등학교가 제공하는 낮은 수준의 기술과 지식만으로는 지식기반사회를 살아가기 어렵다.
나는 대학교육을 1+3으로 나누고 전공탐색과정에 해당하는 처음 1년을 ‘공교육화’할 것을 제안한다(대학과정을 몇 단계로 쪼개고 각각의 단계마다 수료증을 주는 것은 직업과 공부를 병행하려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현재 각 대학에서 교양과목은 대부분 외부 시간강사들이 맡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전환은 기술적으로 별로 어렵지 않다. 이것을 입시제도의 개혁과 연결한다면, 현재 쟁점이 되는 부분들을 거의 해결할 수 있다.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꿀 수 있고 내신도 그럴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국가가 관리하는 전공탐색과정에 등록하여 관심 있는 수업을 들으면서 진로를 정한다(일부 강의는 졸업시험 점수에 따라 수강을 제한한다). 그리고 1년을 마친 뒤에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낸다(대학 진학을 원하지 않을 경우 실용적인 과목 중심으로 들으면 된다). 각 대학은 지원자가 수강한 과목과 학점을 가지고 입학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이 정책을 시행하려면 대학들의 등록금 수입 손실을 보전해주어야 하므로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예산보다는 적을 것이다. 게다가 이 정책은 시간강사 문제를 해결하는 훌륭한 기회가 될 수 있다. 3년마다 반복되는 대입개혁 논의가 지겹지 않은가? 이제는 멀리 내다보며 큰 그림을 그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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