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9.16 17:55
수정 : 2018.09.17 15:47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일제강점기 이후 한반도 남쪽에서 인구와 관련한 세번의 정책 변화가 있었다. 1920~1950년대 출산 장려(1기), 1960~1995년 출산 억제, 그 이후부터 지금껏 출산 장려(2기). 출산 장려 1기와 2기는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크다. 성장이나 발전이 1기의 목표였다면, 2기는 보존이나 소멸 방지를 겨냥한다.
사실 우리는 비교적 최근에야 저출산 또는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감소 문제를 마주했다. 아마 그래서 충격과 공포가 새롭고 강한 듯하다. 실제 인구는 유사 이래 가장 많으며 당분간, 적어도 2031년까지 더 증가할 것이 분명함에도 정부, 학자·전문가, 대중매체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외친다. ‘우리는 곧 사라질 거야.’ 인구 감소 걱정을 100년 전부터 해온 다른 나라들에서 무언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바로 독일과 스웨덴이다.
독일은 스웨덴보다 걱정을 조금 더 일찍 시작했다. 1911년부터 인구 감소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이래 1930년대 꽃을 피웠다. 독일의 인구통계학자 프리드리히 부르크되르퍼는 1932년 그의 주저인 <청소년 없는 민족>을 출간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스웨덴의 알바·군나르 뮈르달 부부는 <인구 문제의 위기>를 펴냈다.
제목에서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두 책은 독일과 스웨덴에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부르크되르퍼의 주장은 나치 독일의 정책으로, 뮈르달 부부의 프로그램은 스웨덴 복지국가의 정책으로 실현되었다. 언뜻 양자의 차이가 커 보이지만 1930년대 서구의 시대정신에서 비롯한 공통점이 있다. 인종생물학의 교리다. 1922년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인종생물학 연구소는 우생학과 관련한 서구의 담론을 주도하였다. 그것은 양국의 인구학자들에게 큰 족적을 남겼다.
독일과 스웨덴의 인구학자들이 1930년대에 정립한 이론과 모형은 오늘날까지 큰 변화 없이 쓰인다. 가령 고등학교 지리 교과서에 실린 인구 구조의 세 모형, 곧 피라미드형, 종형, 항아리형은 바로 부르크되르퍼에서 비롯했다. 아직 교과서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뜻하는 역피라미드형을 언급하는 경우가 최근 잦은데 그것 역시 부르크되르퍼의 작품이다.
뮈르달 부부와 부르크되르퍼의 또 한가지 공통점은 ‘민족 공간 모델’이다. 그것이 말하는 바는 이랬다. 스웨덴과 독일은 제한된 공간에 동질적인 민족이 거주하며, 자신들을 그럭저럭 재생산할 뿐이다. 고령화로 활력을 상실하고, 핀란드인이나 슬라브인의 유입으로 민족 동질성이 파괴될 것이다.
1930년대에 정립된 두가지 지적 유산, 즉 인구 구조 모형과 민족 공간 모델은 1960년대까지 독일과 스웨덴의 인구 정책을 주도했지만 1970년대 이후 달라졌다. 독일은 예전의 것들을 답습했고 스웨덴은 이주민에게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민족 공간 모델을 포기했다. 변화를 꾀한 스웨덴에는 걱정보다 여유가 생겼고, 유산을 고집한 독일에는 여전히 걱정이 주를 이룬다. 100년 된 레퍼토리인 고령화, 출산력 퇴화, 민족 동질성 파괴가 여태껏 유행이다.
양국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세가지다. 첫째, 100년 동안 걱정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소멸하지 않았다. 둘째, 그 어느 때보다 잘 산다. 셋째, 인구 변동은 불변의 자연법칙처럼 우리를 지배할 수 없으며 관건은 적절한 대응책의 모색이다. 그에 필요한 것은 낡은 지적 유산의 폐기다.
선배 ‘걱정 국가’에 비해 우리는 고작 20년 남짓 걱정했다. 더 걱정해야 할까, 아니면 대응책 모색에 힘을 써야 할까? 선택은 우리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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