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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01 17:43 수정 : 2018.10.02 12:39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염색과 파마를 허용하는 두발 자유를 선언하자 학생들은 학생다워야 하며 학생다움은 단정함에서 나온다는 주장이 ‘또’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머리카락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 되묻기도 한다. 글쎄… 머리카락은 중요하다.

조선 후기 단발령에 선비와 유생뿐 아니라 민중은 ‘손발을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며 반발했다. 강제로 상투가 잘리자 반일감정은 의병으로 이어졌다. 고등학생 딸에게 의견을 묻자 답했다. “털?… 남의 털 가지고 왜들 그리 난리야.” 그렇지! 그것은 내 털이지 네 털이 아니다.

2010년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최초로 만들어졌다. 개성을 실현할 권리 항목에 ‘학교는 두발 길이를 규제해서는 아니 된다’고 적혀 있다. ‘길이 제한만 못 한다’는 뜻이다. 조례 제정 위원으로 참여했다. 아니 참전(參戰)했다. 최초인 만큼 최선을 다했다. 그만큼 몇 분도 열심이었다. 염색, 파마만은 막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시기상조라 주장했다. 체벌 금지 조항이 들어갔으니 학교가 혼란의 도가니에 빠질 것이라 예언도 했다. 학생이 단 한명도 없는 위원회에서 학생 인권을 정하며 어른끼리 심각했다. 회의할 때마다 회의(懷疑)에 빠졌다. 그런 상황에서 후발주자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고, 여러 지역이 따랐다. 논쟁은 비슷하게 전개됐다.

인권조례가 만들어지자 변화가 시작됐다. 진통은 있었지만 8년 동안 학교는 조금씩 변해갔다. 체벌 대신 교육을 찾으려 노력하고 두발제한 규정을 통째로 없앤 후 평화를 찾은 학교도 생겼다. 하지만 인권조례가 교육 현실을 무시하고 교권을 침해하고 학생들을 무책임한 존재로 전락시킨다는 오명은 여전하다. 교사들은 ‘인권만 주장하는 학생들’ 뒷담화에 바쁘고 학부모들은 ‘지금은 공부할 때’라며 열변을 토한다. 관료들은 모르쇠 하며 뒷짐 지고 있다.

이런 때 한걸음 더 나가자는 제안이 등장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학교는 저마다 자율을 주장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그 ‘때’가 여전히 오지 않았다 할 것이다. 정글 같은 학교, 폭도 같은 학생들을 모르는 관료주의적 발상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학생만 제외한 카르텔은 인권 따위에 자리를 내주지 않기 위해 공장을 돌리기 시작했다. 더딘 변화지만 가능한 미래를 바라보는 눈은 여전히 소수다.

대학에서 ‘시민교육’ 강의를 몇 년째 하고 있다. 어제까지 단발령에 익숙했던 청소년들은 해마다 ‘1월1일’자 어른으로 발령받고 강의실로 온다. “시민이란 누구인가?” 물으면 자유와 평등, 존엄, 민주주의와 정의… 단어들을 열거한다. “그래요. 알았어요. 그런데 저는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는 걸 싫어하거든요. 여러분 휴대전화는 수거합니다”라고 말한다. 삼십여명 중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은 대체로 한명도 없다. 휴대전화는 수거된다. 다시 묻는다. “이러한 행위는 정당한가, 당신들은 자유로우며 평등한가? 존엄하며 결정권을 가진 존재인가? 민주주의와 정의는 어디 있는가?” ‘시민이란 누구인가?’를 새롭게 묻는다. 자신 있게 대답하는 이가 없다.

스무살 새벽 동이 트자 시민 신분으로 환생하는 일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 자기 삶을 책임지는 시민이 된다니, 놀랍고 위대하다. 사회와 학교에서 배운 적 없는 것을 스스로 터득했으니 말이다.

“염색과 파마가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묻는다면… 맞다. 그깟것 중요하지 않다. 다만 20살 미만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그냥, 원래, 계속 없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어린 시민은 권위에 기죽고 부당한 일에 침묵하며 억울해도 참는 순종의 참사람으로 성장할 뿐이다. 자신의 ‘털’조차 자기 것이 아닌 수치심을 감내하면서, 무럭무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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