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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02 18:09 수정 : 2018.10.03 13:17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서방 세계는 극우 민족주의의 창궐과 함께 타자를 혐오하고 분열과 적대를 키우는 나쁜 정치로 퇴행했다. 자유·평등·진보와 같은 근대의 보편적 가치들도 도전을 받고 있다. 그 본질은 기성 체제에 대한 대중의 반란이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은 대중 반란의 절정이었다. 브렉시트는 탈산업화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외국인의 유입으로 연금 축소를 우려하는 노인, 긴축정책에 따른 복지예산 삭감으로 어려움이 가중된 지방 거주민이 세계화를 주도한 엘리트와 유럽연합의 오만한 관료를 상대로 벌인 복수극이었다. 트럼프 당선은 흑인과 히스패닉, 엘리트와 대도시 주민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권력과 자원과 존경을 빼앗겼다고 느끼는 이들 덕분에 가능했다.

문제의 핵심에는 세계화와 자유방임시장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맹신’이 있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집권당이 되면, 어느 당이건 세계화와 시장원리의 확산이 불가항력적인 대세이자 해법이라며 그 속도를 높였다. 높은 교육수준에 힘입어 세계화의 혜택은 톡톡히 누리되 비용은 부담하지 않는 대도시의 글로벌 엘리트와, 제조업 공동화와 지방 소멸 속에서 삶이 고단해진 저학력 노동계급 사이에 운명이 극명하게 갈렸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화의 정당성을 정교하게 설파했던 <이코노미스트>조차 신자유주의를 대신할 새로운 이념의 출현과 ‘자유주의’의 혁신을 촉구하는 상황이 되었다. 최근 이 잡지는 신자유주의를 이끌었던 영국 ‘보수당’의 혁신을 소상히 소개하고 있다. 나라의 장래보다는 개인의 영달에 눈이 멀어 브렉시트를 둘러싼 당 내부의 불협화음을 키우는 ‘구태’ 의원들의 영향력은 여전하지만, 여성·소수인종·동성애자들이 대거 영입됨으로써 이튼과 옥스퍼드 출신 일색이던 귀족과 부자의 정당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때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의원 구성이 다양해지면서 보수당 내 ‘아이디어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 경쟁과 자기 책임만을 강조한 그간의 ‘대처주의’를 고집하는 세력도 있지만, 노동계급까지 포용해 ‘하나의 국민’을 이루려 했던 따뜻한 보수주의자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를 되살리려는 세력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대기업집단 해체를 단행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나 미국 사회의 역사적 물길을 왼쪽으로 틀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귀감으로 내세우는 ‘진보적’ 보수당 의원도 늘어나고 있다.

이 세 분파 중 <이코노미스트>가 국가적 문제 해결과 보수당 혁신에 기대를 하는 것은 ‘뉴딜’ 분파이다. 지역·부문·계급 간 격차를 줄이고 독과점의 폐해를 일소하며 지대 추구를 억제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국가 개입이 늘더라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유연한 실용주의에 높은 점수를 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영국 사회의 곤경이 이 정도 해법으로 풀릴지는 의문이다. 수십년간 권력이 자본 쪽에 있고 보통사람들이 영향력을 잃은 게 사태의 본질이라며 대대적인 경제민주화 정책을 제시한 노동당의 대안에 눈길이 더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동자의 이사회 참여, 기업 지분 10%의 사회 환원, 정부의 축소와 지역민의 권한 강화, 풀뿌리 조직과 협동조합 활성화를 내건 노동당, 그리고 ‘진보’의 아이디어까지 수용해 국민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보수당 사이에 펼쳐지는 ‘아이디어 경쟁’이 ‘지적 게으름’과 가짜뉴스와 소모적 정쟁으로 발목 잡힌 우리 사회에도 타산지석의 교훈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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