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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26 10:08 수정 : 2014.04.03 10:46

황현진 소설 <3화>



중학생이 된 후, 처음 맞는 여름방학이었다. 우리는 낚시를 다니기 시작했다. 재하의 아버지가 쓰던 낡은 낚싯대를 내가 집 뒤꼍에서 우연히 발견한 뒤부터였다. 재하와 내가 낚싯대의 줄을 손보는 동안 누나는 매우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어깨에 담요를 두르고 나와서 그 모습을 한참 동안 구경했다. 하지만 금세 질렸는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담요를 질질 끌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재하야.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하는 못 들은 체했다. 낚싯대를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아서였다.

재하야.

다시 한 번 재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먼저 일어섰다. 재하가 마지못해 뒤따라 일어섰다.

보나 마나야.

재하가 툴툴거리며 앞장섰다. 누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재하와 나는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 누나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굳이, 책을, 읽으며.

한 단어 한 단어를 말할 때마다 누나는 심호흡을 했다.

살, 필요가, 없어.

누나가 더 할 말이 있다는 듯 힘겹게 침을 삼키곤 마른 입술을 달싹거렸다. 나는 누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누나는 기어코 눈을 감았다. 누나가 나와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서 그런 줄 알았는데, 누나는 확실히 죽어가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랬다. 그렇다면 그 말들은 유언이나 다를 바 없는데 누나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유언을 남겼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나마저도 숨이 곧장 끊어질 것처럼 가슴 언저리가 갑갑해졌다. 그날 이후, 누나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께로 번져나가는 둔통이 수시로 나를 찾아와 괴롭혔다.

재하와 나는 강변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한 달 남짓 지나는 동안 서너 차례 폭우가 쏟아졌다. 강물이 크게 불어나 있었다. 우리는 강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모래밭 깊숙이 낚싯대를 꽂아놓고 연신 수다를 떨었다. 고기를 잡는 일 따위엔 애초부터 관심 없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강변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지는 해의 그림자를 바라보는 것, 우리는 그 자체를 즐겼다. 그 풍경에선 어쩐지 어른의 냄새가 났다. 우리의 부모를 닮지 않은, 우리가 꿈꾸는 어른의 냄새. 게다가 재하의 아버지도, 나의 아버지도 그런 삶이 꿈이라고 한두 번쯤 지나가듯 말한 적이 있음을 우리는 기억했다. 재하와 나는 서로의 부모를 비교하면서 둘 중 어느 부모도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곤 서로의 어깨를 치며 웃었다.

아들들이란.

재하는 마치 둘의 대화를 엿들은 아버지처럼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부모들이란 늘 우리 기대 이하지.

내가 맞받아쳤고 재하가 허리를 뒤로 꺾으며 큰 소리로 웃었다. 그 순간 나에겐 아주 오랫동안 재하와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적어도 하릴없는 오후에 강가에 낚싯대를 드리울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각자의 아버지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재하를 질투하거나 시기할 만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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