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진 소설 <4화>
우리 누나는 미쳤어.
재하는 툭하면 누나를 미친년이라고 했다. 누나에게 아주 넌더리가 난다는 듯 굴었다. 재하는 한창 누나와 침대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재하는 2층 침대의 위 칸에서 내려오기를 원했다. 부쩍 키가 자라기 시작하면서 몸무게도 나날이 늘어났다. 이미 낡을 대로 낡아버린 침대가 70킬로그램의 하중을 언제까지 버텨낼지 위험천만할 지경이라고, 재하는 누나를 설득했다. 누나는 재하의 말에 도리어 즐거워했다. 재하에 따르면 누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시체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옛날엔 입가에 케첩을 바르고 아무 데나 누워 있었다니까. 내가 아무리 엉덩이를 걷어차도 소용없어. 데굴데굴 구르면서 한참을 웃어대. 그나마 요즘은 매우 어른답게 죽는 편이지.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누나는 빨간 포스터물감을 뜨거운 물에 풀어서는 이불 위에 뿌렸다. 목화솜으로 만든 아주 무거운 이불이었다. 재하의 엄마는 그 이불을 매우 아껴서 일 년 내내 요 대신 안방에 깔아두고 그 위에서만 잠을 잤다. 한여름엔 이불 위에 대자리를 깔았다. 긴 시간 녹록지 않은 노동에도 허리가 아프지 않은 이유는 오로지 그 이불 때문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누나는 바로 그 이불에 무럭무럭 김이 나는 붉은 물을 뿌리고 사지를 기이하게 뒤튼 자세로 엎어져 식구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부엌칼을 안방 문 입구에 삐뚜름하게 던져놓은 채로.
누나는 죽을 만큼 맞았다. 등짝에 수십 개의 벌건 줄이 그어졌다. 그 주에 열린 백일장에서 누나는 장원을 했다. 그날부터 재하의 엄마는 딸이 들고 온 상장을 부끄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누나의 상장들은 화장대 서랍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가끔씩 재하의 엄마는 그것들을 꺼내보긴 했지만 코팅을 한다거나 액자에 넣어두는 일 따위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다. 누나 역시 시체놀이를 그만두지 않았다. 아무도 시시때때로 죽은 체하느라 바쁜 그녀를 아는 체하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 되살아나기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돌아서면 어느새 그녀는 책상 앞에 책을 펴고 앉아 있었다. 누나가 책상 앞에 앉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보다 그럼직한 시체의 자세를 골똘히 연구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불 홑청을 벗기면 아직도 그 붉은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우리 누나 미친년 맞지?
재하가 낚싯대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내게 물어왔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그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 말았다. 솔직히 나는 헷갈렸다. 내가 누나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재하에게 누나가 있다는 사실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그 둘을 구분해내지 않으면 어떤 대답도 진심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고개를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끄덕이는 동안 나는 깨달았다. 내가 누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자 나도 누나처럼 죽은 체 모래사장에 얼굴을 처박고 자빠지고 싶었다.
부끄러웠다. 나는 누나를 잘 몰랐지만 이해는 했다.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기대, 누구나 한 번쯤 그 기대에 부응할 만한 일을 겪는다. 그 대단한 일의 절정에는 죽음이 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에 누나가 어떤 책의 줄거리를 내게 전해줄 때 그 비슷한 말로 말문을 연 적이 있다. 모든 책의 주인공들이 그러한 것처럼 누나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기대감을 도무지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흉내라도 내지 않고선 곧 펼쳐질 이야기의 절정을 기다리는 일이 무료해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 이후가 너무 궁금해서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누나는 매번 실망했을 게 분명했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으니까. 다들 화만 냈을 테니까. 매질을 아끼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니. 부끄러운 줄 알면서 아무 말도 번복하지 않다니. 혼자 집에서 책을 읽었다고 말할 때와는 아주 다른 수치심이, 비로소 내가 첫사랑에 빠져버렸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첫사랑은 이래저래 부끄러운 일이 맞긴 했다. 아니면 대부분의 사랑이 그렇거나.
때마침 재하의 낚싯대가 흔들렸다. 재하가 벌떡 일어나 낚싯대를 빼 들었다. 바늘에 미끼를 끼우지 않았다는 걸, 빈 바늘에 대고 아가미를 벌리는 물고기는 없다는 걸 재하는 영 모르는 듯했다. 저만치 강 한가운데에서, 부리가 길고 다리가 가느다란, 우리가 전혀 이름을 알지 못하는, 학이거나 두루미일 리는 없는 그 새가 나와 재하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재하가 그 새를 쳐다보며 말했다.
차라리 저 새나 잡아볼까? 총으로 말이야.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노고에 비해 얼마나 쓸데없는 포획물인지 재하는 또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재하의 관자놀이를 가볍게 때리며 소리 내어 웃었다. 문득 재하가 날 웃게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바보 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주 조금 더 오래 웃어주었고 재하가 뒤늦게 따라 웃다가 슬며시 일어나 낚싯대를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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