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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28 09:52 수정 : 2014.04.03 10:47

황현진 소설 <5화>



해가 지면서 기온이 크게 떨어졌다. 아침 뉴스에서 태풍이 근접하고 있다는 예보를 들은 기억이 났다. 슬슬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도 눅눅한 한기가 돌았다. 처음 재하네 집에 놀러 갔을 때가 떠올랐다. 다리 끝에서 재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원들을 태운 버스가 다리 위를 빠른 속도로 달렸다. 내내 바람이 불었다. 머리칼이 헝클어져 내 몰골은 볼품없었다. 재하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걸음을 빨리하려 노력했다. 바람도 점점 거세졌다. 다리 위를 벗어나기가 힘들 정도였다. 나는 고작 열두 살이었고 성장이 늦은 편이었다. 재하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우리 둘이 함께 다니면 애티가 더욱 두드러졌다.

나는 좀처럼 바람에 맞서지 못하는 더딘 걸음을 자꾸 의식하는 바람에 표정 또한 굳어갔다. 그래서일까, 마침내 재하 옆에 섰을 때 재하 역시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나는 재하가 내 표정을 따라 짓고 있다고 여겼다. 보다 간절하게 친구를 필요로 하는 쪽은 내가 아니라 재하라고 치부하던 때였으니까.

우리는 좁은 강둑 위를 30여 분 걸었다. 강 반대쪽에 비닐하우스들이 즐비했다. 사람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전부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을 한다고 재하가 설명했다. 재하 부모도 그 많은 비닐하우스 중 한 곳에서 온종일 품을 팔았다. 태풍 예보가 있는 날에는 그들의 일손도 더더욱 바빠졌다. 낮은 구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좁은 동네가 길 끝에 보이기 시작했을 때, 재하가 우물쭈물하더니 입을 열었다.

근데 우리 집에 누나가 있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

우리 누나가 좀 아파.

그제야 나의 방문이 실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럼 우리 집에 갈래? 라는 물음은 죽어도 던지고 싶지 않았다.

난 괜찮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기껏 그뿐이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다른 대답은 아예 생각조차 못 했다.

아니, 네가 놀랄까 봐.

순간 이상했다. 그게 누군가를 놀라게 할 일인가, 의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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