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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04 09:45 수정 : 2014.04.04 11:21

황현진 소설 <10화>



나는 다리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다.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아래로 떨어질지도 몰랐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재하가 나를 보고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줬으면 싶었다. 여전히 눈으로는 누나를 찾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재하가 눈치채길 바랐다. 나는 보란 듯 멈춰 서서 강의 오른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뭔가 작은 형체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불 켜진 비닐하우스 안을 바삐 오가는 사람들의 그림자만 뚜렷하게 보였다. 나는 가만히 서서 누나의 행방에 골몰했다. 내기의 결과에 상관없이 책을 빌려줘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재하의 이름을 불러볼까도 싶었다. 목청을 가다듬다가 말았다. 어차피 들리지 않을 것이다. 쓸데없이 놀란 새들이 아까처럼 이상한 소리라도 내지른다면 재하만 식겁할 게 뻔했다.

다시 발걸음을 떼던 참에 나는 다리 아래를 지나가는 하얀 옷자락을 보았다. 뭔가가 강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옷자락이 아닐 수도 있었다. 강 위를 돌아다니는 하얀 것들은 사실 백로라는 저 새들이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다리 밑을 더 살펴볼 엄두 따윈 내지 못하고 뛰다시피 다리 위를 건넜다. 무서웠다. 그것이 새라면 단숨에 날아올라 내 어깨에 발톱을 박아 넣는 일이 없으란 법도 없고, 만약 내가 본 것이 누군가의 옷자락이라면, 나는 아무래도 그런 것을 본 적 없다고, 그렇게밖에 달리 말할 수가 없었다.

뛰면서 나는 속으로 재하를 불렀다. 재하를 부르면서 누나를 생각했다. 갑자기 누나가 그토록 불렀던 재하라는 이름이, 사실은 나를 불렀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고 싶었다. 울었다. 다리를 모두 지나왔을 때부터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울며 걷고, 울며 뛰었다.

나는 벌게진 두 뺨을 연신 훔쳐내며 현관문을 열었다.

이제 오니.

난데없는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엄마의 목소리였다. 비쭉 고개부터 들이미니 식탁 앞에 앉아 있던 엄마가 허리를 뒤로 한껏 젖히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어디 갔다 왔어?

엄마가 물었다. 나는 우물거리며 그저 손으로 등 뒤를 가리키기만 했다. 등 뒤에 누나가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엄마가 왜, 지금 집에?

나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엄마가 웃었다. 그러곤 허리를 곧게 펴더니 나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쳤다.

나 회사 그만뒀어.

엄마는 천장을 흘깃 바라보다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부터 엄마가 우리 아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려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마가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책을 집어 들더니 내게 흔들어 보였다. 마치 내 친구 노릇을 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처럼, 오로지 그것만이 삶의 목표인 사람처럼. 정작 자신도 친구 따윈 단 한 명도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어색한 손 인사를 내게 막 건네고 있었다.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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