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돈 소설 <2화>
시간이 지나 그 위로가 되지 않는 위로는 톰에게 고스란히 돌아왔다. 톰이 자신의 첫 소설 《찌꺼기Remainder》를 출간했기 때문이다. 사이먼이 톰에게 소설을 쓰라고 권한 뒤 5년 만의 일이며, 사이먼의 책이 나온 지 1년 만의 일이었다.
톰은 런던의 바비컨 센터(Barbican centre)에서 이 소설을 썼으며 탈고하는 날 템스 강변을 거닐며 형용하기 힘든 기분에 휩싸였다. 때는 가을이었는데 어깨에 떨어진 낙엽을 털어내는 중년 남자가 지나갔고 계절에 맞지 않게 짧은 치마를 입은 적갈색 머리의 미국 여자가(분명 미국 여자였다) 톰에게 미소를 건넸다. 톰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뭔가를 완수했으며 어쩌면 이 소설이 대단한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른다고, 유수의 언론과 잡지에서 격찬을 받게 될지도 모르며 적갈색 머리의 미국 여자와 기이하고 낭만적인 페티시 섹스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톰의 기대와 다르게 《찌꺼기》는 영국의 거의 모든 출판사에서 출간을 거절당했다. 톰은 자존심을 버리고 옥스퍼드 출판부(Oxford University Press)에까지 원고를 보냈는데 거기선 답신도 없었다. 좌절한 톰을 구해준 건 이번에도 사이먼이었다. 사이먼은 파리에서 소규모 출판사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톰의 원고를 건네주었다. 메트로놈 프레스(metronome press)라는 이름의 출판사로 주로 예술 잡지를 출간했는데 종종 실험적이고 형편없는 소설이나 시도 내곤 했다. 얼마 후 알폰소(Alphonso)라는 이름의 나이 지긋한 편집자가 톰을 만나러 영국으로 왔다. 톰은 알폰소를 데리고 자주 가던 이스트엔드오브런던(East End of London)의 카페로 갔다. 알폰소는 외눈박이로 왼쪽 눈에 안대를 끼고 있었다. 톰은 어쩌다 그리됐냐고 물었다. 알폰소는 카푸치노를 시키며, 선천적으로 한쪽 눈이 안 보인다고 했다. 태어남의 문제였지요. 대신 그는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본다고 말했다. 톰은 혹시 알폰소가 유령이라도 보는 것은 아닐까, 기대감에 가득 차 뭘 보느냐고 물었다. 알폰소는 거들먹거리는 미소와 함께, 당신의 작품 같은 숨겨진 걸작을 보지요, 라고 대답했다. 톰은 알폰소에게 자신이 들은 대답 중 가장 실망스러운 대답이라고 대답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