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돈 소설 <3화>
1. 펀처 A(Puncher A)
톰이 사이먼의 충고를 받아들여 소설을 쓰기 시작한 때로 돌아가자. 톰은 암스테르담 생활을 정리하고 런던으로 돌아왔지만 머물 곳이 없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끔찍한 코크니 사투리(Cockney Dialect)를 다시 듣느니 목을 매는 게 나았다. 톰은 일부러 웨일스 사투리(Welsh accent)를 썼는데 덜떨어져 보이는 덴 제격이었다. 사이먼은 그게 무슨 미친 짓이냐고 핀잔을 줬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톰은 늘 웨일스 사투리를 구사했다. 술에 취했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코크니 사투리가 나왔다.
처음 몇 달은 켄싱턴 가든(Kensington Garden)에서 노숙을 했다. 그 이후엔 우연히 만난 트랜스젠더들과 함께 페컴(Peckham) 지역의 공립 주택을 점거하고 살았다. 골 때리는 시간이었다. 같은 방에 살던 사라 월트맨(Sara Waltman)은 모로코 태생의 트랜스젠더로 뻑뻑한 수염이 가득한 턱을 들이밀며 키스를 해댔다. 입을 맞출 때마다 볼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먹고사는 데 문제는 없었지만 글을 쓸 환경은 아니었다. 텔레비전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고 책 한 권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톰은 결국 옥스퍼드 동창인 제임스에게 전화를 걸었고 제임스는 바비컨 센터에 입주해 있던 친구, 펀처 A를 소개시켜줬다.
펀처 A? 이름이 뭐 그래?
톰이 말했다.
펀처 A. 보통은 A 펀처라고 해.
그게 무슨 차이야?
몰라. 다들 그렇게 불러.
펀처 A는 골드스미스(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 출신의 주목받는 화가였다. 바비컨 센터에 입주한 지는 육 개월가량 됐는데 룸메이트를 구한다고 했다. 돈은 필요 없었다. 어차피 공짜로 입주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서 룸메이트를 구한다고 했다.
게이인가?
아니. 반대야. 여자라면 환장을 하지.
펀처 A의 집은 하수구 같았다. 톰은 평생 그렇게 냄새나는 집은 본 적이 없었다. 펀처 A는 아무 데나 침을 뱉고 오줌을 눴다. 톰은 바로 청소를 시작했고 집을 깨끗이 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펀처 A는 짧은 곱슬머리에 작달막한 키, 뺨에 난 긴 칼자국이 인상적인 청년으로 평소에는 잘 웃고 잘 울고 잘 먹었지만 해만 지면 사람이 돌변해 켄타우로스라도 되는 양 거리로 나가 시비를 걸고 다녔다. 동네 사람들은 펀처 A를 악마의 자식이라며 슬금슬금 피했다. 그럴만한 것이 밤만 되면 시뻘겋게 피칠갑을 한 펀처 A가 거리를 어슬렁거렸기 때문이다. 꼬리가 달려 있어도 이상할 거 없는 형상이었다. 주머니엔 늘 스미스 웨슨 38구경을 넣고 다녔는데 본인 말에 의하면 한 번도 쏜 적이 없다고 했다.
펀처 A의 그림은 근육질의 남성과 성기를 연상케 하는 조형물이 덕지덕지 붙은 자기과시적이고 글램록적이며 계시적이고 신화적인, 일종의 산업폐기물로 톰이 봤을 땐 폐기가 시급했다. 톰은 펀처 A가 왜 주목받는 신진 작가가 됐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 Martin)을 패기라도 한 걸까.
그건 내가 외롭기 때문이야.
펀처 A가 말했다.
뭐라고?
외로움은 그림을 강하게 만들지. 스트롱.
톰은 뭐라 할 말이 없어, 아무튼 개성은 있다고 말했다.
개성 따위 엿이나 먹으라고.
펀처 A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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