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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10 09:59 수정 : 2014.04.17 10:02

정지돈 소설 <4화>



톰이 펀처 A의 집에 들어간 그해, 영국은 시끌벅적했다. 오아시스와 라디오헤드의 앨범이 빅히트를 쳤고 《해리 포터》의 첫 책이 나왔으며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의 <센세이션(Sensation)>전은 대성황을 이루었다. 토니 블레어는 문화부 장관 크리스 스미스를 앞세워 엄청난 돈을 문화예술계에 퍼부었다. 안타깝게도 펀처 A는 <센세이션>전에 포함되지 못했는데, 펀처 A는 그게 찰스 사치가 자신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쨌건 톰에겐 그 모든 난리 법석이 먼일처럼 느껴졌다. 톰은 바비컨 센터의 칙칙한 회랑을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글을 쓸 때 떠올린 사람은 펀처 A였다.

펀처 A는 소위 YBA(young British artists)니 하는 골드스미스 동창들을 개똥으로 생각했는데, 사실 뒷구멍으로는 그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주목받는 신인 작가였던 그가 전시에 참가하지 못한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에겐 제대로 된 작품이 없었다. 쌈박질이 끝나면 그림을 그린다고 만날 밤을 새웠지만 완성은 못 했다. 스튜디오에 드러누워 갱 영화나 그래픽 노블을 지칠 때까지 보며 자기혐오를 껌처럼 질겅질겅 씹어댔기 때문이다.

톰이 뭐 하냐고, 그림 안 그리느냐고 물으면 펀처 A는 이마 위로 흐르는 핏물을 닦으며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자신이 정말 작가로 성공하고 싶은지,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정말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잠이 들었고 밤이 되면 손에 투명 글러브라도 낀 것처럼 벌떡 일어나 거리(streetring)로 입장했다.

톰의 소설은 피투성이가 된 A가 정신을 차리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A가 정신을 차린 곳은 페컴 지역의 어느 뒷골목으로 부러진 이와 쥐똥, 구겨진 명함이 그의 곁에 나뒹굴고 있었다. A는 기억을 더듬었지만 왜 자신이 그곳에 누워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명함에는 하운드앤드피시(hound and fish) 에디터 조제프 코신스키(joseph Kosinski)라고 쓰여 있었다. 처음 보는 이름이었고 처음 보는 잡지였다. 하운드앤드피시라.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는 고민한다. A는 생각한다. 그러나 A는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고, 기억나는 거라곤 오직 자신의 아버지가 삼류 영화배우였다는 사실, 어머니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생을 마쳤다는 사실뿐이다.

톰이 여기까지 소설을 쓰는 데 석 달이 걸렸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이 끌리고, 거기에 따라 머리를 짜내 만들어낸 설정이었지만 쓰고 보니 얼기설기한 기억을 꿰매고 조잡한 지식을 덕지덕지 기워 만든 헛소리에 불과했다. 물론 아주 재미없는 건 아니었다. 사이먼은 그런대로 읽어줄 만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이야기를 풀어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뭐가 문제인 걸까. 톰은 바비컨 센터 구석에 있는 자신의 전용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흰색 원형 테이블이 희뿌옇게 빛을 발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A는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 톰은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전까지의 삶에서는 건져낼 수 없는 무언가를 건져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뭘까. 톰은 벌떡 일어나 머리를 쥐어뜯었다. 조금 전의 질문은 틀려먹었어. 그건 단지 질문을 위한 질문, 생각을 가장하기 위한 질문일 뿐이야. 갑자기 자신이 머리를 쥐어뜯는 모습이 영화나 소설에서 본 모습, 인위적인 흉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어색했고 가짜 같았다. 다시 시작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게 다 펀처 A 때문이야. 그를 모델로 삼은 게 결정적인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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