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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11 09:45 수정 : 2014.04.17 10:03

정지돈 소설 <5화>



2. INS(International Necronautical Society)

1999년 12월 14일 자 〈타임스(The Times)〉 1면에 INS라는 단체의 선언문이 실렸다. INS는 인터내셔널 네크로노티컬 소사이어티의 약자로 국제죽음항해단체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선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죽음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다.

2. 죽음은 우리 곁에 있다. 사물에 사람에 바람에 에스프레소에 신문에 아스팔트에 클리토리스에.

3. 죽음 없이는 어떠한 아름다움도 없다.

4. 아름다움은 없다.

5. 그리고

6. 우리의 목표는 죽음을 실어 나르는 것이다. 죽음은 전쟁, 기아, 질병, 소행성 충돌과 같은 공포 속에서 인류를 구원할 것이다.

Cras Ingens Iterabimus Aequor



INS의 선언문은 즉각적인 호응과 공포, 의문, 멸시, 비웃음, 환호를 이끌어냈다. 런던 경찰은 INS의 선언을 잠재적인 테러 위협으로 간주하고 블랙리스트에 INS를 추가했으며 단체의 정체와 구성원, 소재 파악에 들어갔다. 예술계는 선언문을 보는 즉시, 이것이 일종의 패러디, 초현실주의나 미래주의자의 선언문을 20세기 말에 반복했다는 사실을 눈치챘으며, 이것이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순응적으로 변해가는 예술계에 가하는 일종의 훅이 될 거란 기대에 찼다. 〈옵서버(Observer)〉의 제임스 퍼던(James Purdon)과 〈아트 먼슬리(Art Monthly)〉의 마르쿠스 페어하겐(Marcus Verhagen)은 INS와 INS가 패러디한 20세기 초 선언들을 분석한 특집 기사를 썼다. 일군의 작가와 화가들은 INS의 선언문을 못 본 척하거나 실제로 못 봤으며 봤다 한들, 단순한 해프닝, 무가치하고 어리석으며 치기 어린 아마추어들의 잔치로 취급했다. 어쨌거나 INS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구구하게 퍼져나갔고 이는 선언문 발표 이후 이어진 INS의 활동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INS는 선언문 발표 이후, BBC 라디오 망을 해킹해 해적 광고를 내보냈으며(News from Death), 터너상(Turner Prize)을 패러디한 터닙상(Turnip Prize)을 서머싯(Somerset) 지방의 촌구석 웨드모어(Wedmore)의 조지 호텔(George Hotel)에서 개최했다. 터닙상 후보에는 가장 노력이 적게 든, 완벽하게 무성의하고 무의미한 작품들이 선정되었으며 첫해에는 배관공 제프 콘돔(Jeff Condom)의 《구미 베어의 혼란Confusion of Gummy Bear》에 수상의 영광이 돌아갔다. INS는 상황주의 이후 가장 거센 파급력을 가진 예술/정치 운동으로 거론되었으며 수많은 혐오자와 추종자를 양산했다.

여기까지가 사이먼 크리츨리가 톰 매카시에게 설명한 INS의 큰 그림이었는데, 톰 매카시는 사이먼의 망상에 어디까지 호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물론 INS는 사이먼 혼자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INS는 톰과 사이먼의 대화 중에 나온 것으로 죽음과 문학, 테러리즘을 결합한 진지하고 유머러스한 미래주의의 공포 버전에 대한 톰 매카시의 꿈과 사이먼의 목표가 결합된 것이었다. 그러나 대화 이후 톰은 소설을 쓰느라 INS의 존재에 대해 잊고 있었고, 사이먼은 정교수 자격을 따느라 여차여차한 것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랬던 사이먼이 INS를 다시 떠올린 건 1999년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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