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돈 소설 <9화>
알폰소가 어떤 인물인지는 몰라도(알폰소에 대한 평가는 그가 죽고 난 뒤로 미루자) 모리스 지로디아스는 위대한 출판인이자 사기꾼이었으며 범법자이자 몽상가였고 위대한 춤꾼이었으며 지칠 줄 모르는 술꾼이었다.
모리스의 아버지 잭 카한(Jack Kahane)은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을 출판한 존경받는 출판인이었다. 모리스는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출판업에 뛰어들었고 나치 점령하의 파리에서 살아남았으며 올랭피아 출판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모리스의 진짜 적은 나치가 아니라 프랑스 정부였다. 전후 파리는 고리타분해서 출판물에 사사건건 간섭했다. 특히 올랭피아 출판사에 더 그랬는데, 검열관들은 출판사의 이름부터 자신들에게 시비를 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사실 맞았다.
모리스 지로디아스는 검열관을 약 올리고 교묘히 피해갔으며 끝없이 깐죽댔다. ‘여행자들의 지침서’는 그러니까 일종의 위장, 보호색이었다. 점잖은 초록색 커버의 이 단순한 시리즈는 막상 펼치면 온갖 음란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모리스는 이 시리즈를 위해 파리의 망명자 군단과 접촉했다. 당시 파리에는 영어를 쓰는 망명자 군단이 있었는데 그들은 <멀린(Merlin)>이라는 난해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고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잡지를 내며 하루하루 굶주리고 있었다. 모리스는 이들에게 올랭피아에서 단행본으로 멀린 시리즈를 내자고 제안했고 그래서 나온 첫 책이 사무엘 베케트의 《와트Watt》였다.
망명자 군단은 올랭피아에서 책을 낸다는 사실에 신이 나서 자기들끼리 뭉쳐 공동으로 소설을 써내기 시작했다. 주축은 알렉산더 트로치(Alexander Trocchi)와 크리스토퍼 로그 등이었는데, 그들은 자신의 책에 DB, Dirty Books라는 이름을 붙이고, 말 그대로 더럽기 짝이 없는 소설을 썼다. 모리스는 무척 만족스러웠고 자신이 나서서 발문을 쓰고 홍보를 했다.
그때가 명실상부 모리스의 전성기였으며 올랭피아의 짧고 빛나는 활황기였지요.
알폰소가 말했다.
올랭피아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죠. 클레멘타인이 말했다. 알폰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직 자신에겐 무한한 이야기가 남아 있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우리는 아마 열흘 밤을 함께 지새우며 장을 보고 요리를 해 먹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라고 했다. 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충분히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요.
그러니까 올랭피아 출판사라는 곳에서 나보코프와 베케트의 작품을 냈다는 거군요.
긴즈버그와 J. P. 돈 레비와 장 주네와 아폴리네르와 사드의 책도 냈지요.
알폰소가 덧붙였다.
아무튼 많은 책을 냈다는 거군요. 톰이 말했다.
그렇죠. 많은 책을 냈습니다.
아직도 나오나요?
아니요. 끝장난 지 오래지요.
알폰소가 말했다.
이베이(ebay)에 가면 중고책을 구할 수 있어요.
클레멘타인이 말했다. 알폰소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베이엔 모든 게 다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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