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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18 09:47 수정 : 2014.04.22 09:45

정지돈 소설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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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는 첫 소설을 출간하고 파리를 떠났다. 당시 모리스 지로디아스는 부업으로 나이트클럽을 경영하고 있었다. 셰 보드카(Chez Vodka)라는 이름의 나이트클럽으로 13세기풍의 화려한 극장에 사드의 작품을 공연으로 올리는 해괴한 콘셉트의 클럽이었다.

파리를 떠야 해, 알폰소.

모리스는 그렇게 말했다. 자신은 매일 밤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흥청망청 놀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신은 사실 밤만 되면 견딜 수 없는데 그건 어둠 속에서 파리의 검열관들이, 자신의 아버지인 잭 카한이, 마르키스 드 사드와 괴벨스가 쫓아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 출판 경력은 끝장났어. 겨우 10년도 못 해먹었는데 말이야.

모리스는 보드카를 잔에 가득 채우며 말했다. 알폰소는 모리스처럼 성공한 작자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모리스의 술주정과 우울증은 연식이 꽤 오래된 거였고,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파리는 가망이 없어, 알폰소.

알폰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지, 파리를 뜬다고 해서 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알폰소는 두렵고 불안했으며 흥분되기 시작했다.

이걸 받게.

모리스가 테이블 아래서 갈색 가죽 가방을 꺼냈다. 가방에는 지폐가 가득했다.

두 번째 소설의 선인세라고 생각해.

모리스가 말했다. 알폰소는 이렇게 큰돈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모리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큰돈이 아니야, 알폰소. 돈은 클 수 없네. 내가 돈을 벌며 유일하게 깨달은 사실이라네.

알폰소는 갈색 가죽 가방을 들고 알제리로 갔다. 1961년이었고 알제리의 독립 투쟁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모리스는 알폰소가 떠나고 사드의 《규방 철학》을 과격하게 각색한 공연을 클럽에 올렸으며, 그로 인해 영업정지를 당하고 파산한다. 그는 1962년 파리를 떠나 뉴욕으로 가지만 이후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알폰소는 알제리가 독립하고 새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아직까지 그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톰과 알폰소는 파리에서의 만남 이후 석 달이 지나고 런던에서 다시 만났다. 잔잔히 비가 뿌리고 있었고 회색 구름이 카페 테이블 위로 쏟아질 듯 낮게 깔려 있었다. 알폰소는 톰의 소설 《찌꺼기》를 건네주었다. 《찌꺼기》의 표지는 ‘여행자들의 지침서’에서 거의 색만 바꿔놓은 것처럼 보였다.다음 주 배본 예정입니다.

알폰소가 말했다.

톰은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소설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표지는 어떤 소설과도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소설 역시 어떤 표지와도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좋아요. 톰이 말했다.

제 책이 다음 권으로 나올 겁니다.

알폰소가 말했다. 알폰소는 웃고 있었고 처음 봤을 때보다 노쇠했으며 지쳐 보였다. 톰은 새 작품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다. 알폰소는 미소를 머금은 채 잠시 뜸을 들였다. 런던의 궂은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는 편안한 표정이었다.

클레멘타인이 말했지요. 선인세는 없다고.

알폰소가 대답했다.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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