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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24 09:57 수정 : 2014.05.13 14:56

최정화 소설 <4화>



그의 기분과 상관없이 대진의 질문 퍼레이드는 계속되었고 대진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고 말았다.

“자제분은 어떻게 두셨나?”

“아들이 하나 있어요.”

“그 아드님은 무얼 하시고?”

그녀는 입술을 우물거릴 뿐 뭐라고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은 20대 초반에는 집에서 빈둥거리며 저녁에는 술이나 마시는 게 일이었고 작년부터는 친구가 운영하는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일을 거들고 있다고 했었다. 그는 그녀가 사실대로 대답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휴대전화를 판매한다는 것은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 전혀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무직이 나았다.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을 테니까.

“선생님이야.”

그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어디 학교?”

“중학교.”

그는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그리고 대진이 더 묻기 전에 덧붙였다.

“과학을 가르치고 있어.”

순간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진은 가구점을 운영하기 전에 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쳤었다. 많고 많은 직업군 중에서 하필이면 선생님을 떠올린 게 원망스러웠다.

대진이 자기도 예전에 선생님이었다고 대꾸하며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여고에서 한문을 가르쳤수다. 뭐, 내 수업을 제대로 듣는 학생은 거의 없었지만. 인문계였는데도 대학 진학률이 형편없었거든요. 반 이상이 엎드려서 자고. 또 깨어 있는 애들 중 반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고…….”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대화를 길게 나누다 보면 거짓말이 들통 날 것이 뻔했다. 그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바통을 쥐고 있는 건 그녀였다. 대진은 이제 막 아련한 추억의 바닷속으로 뛰어든 참이라 그곳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요새 한창 정신없겠네요?”

그녀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흘끗 쳐다보았다.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고 무릎을 만지작거렸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대진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것이 어떤 건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어색한 침묵의 시간을 끊으며 마침내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허옇게 질린 얼굴로 단어 하나마다 힘을 주어 답했다.

“시험 기간이니까요. 그 애가 그랬어요. 그 애는 어젯밤에 시험문제를 내던 중이라고 나한테 그랬답니다.”

그녀는 적절한 대답을 찾았다는 점에 대해 스스로 놀란 것 같았다. 호흡이 빨라지더니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는 두 눈을 껌뻑거리다가 배낭에서 물통을 꺼냈다. 급하게 물을 들이켜고 가슴을 두어 번 쓸어내렸다. 대진이 그래도 아직까진 교사만 한 직업을 찾기는 힘들다고 말한 뒤 허허 웃으면서 대화를 마무리했다. 대진이 자리를 옮긴 후에도 그녀의 어깨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는데도 혼자서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은 마치 조금 전에 내뱉은 문장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갑자기 딸꾹질을 하기 시작하자 그는 그게 자신이 그녀의 자존심을 분질러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그녀의 손을 쥐었다. 손은 차가웠고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가 그녀의 손바닥을 펴서 허벅지에 문질렀다. 그녀가 슬그머니 손을 빼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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