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소설 <7화>
대진이 식당 제일 구석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그는 정반대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안주인이 커다란 양푼에 담긴 보리밥과 갖은 종류의 산나물을 내왔지만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밥맛이 없었다. 그녀의 거짓말이 계속될수록 그는 위태로움을 느꼈다. 그는 학찬의 부인이 그녀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취해 있었다. 알코올이 아니라 거짓말 때문에 그녀는 완전히 취했다. 알코올이 뇌에서 엔도르핀과 도파민을 자극하는 것과 똑같은 원리로 거짓말이 그녀를 즐겁고, 들뜨고, 용감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녀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리다가 잠깐 나오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다음 그녀가 쭈뼛대며 뒤따라 나갔다.
“저 어땠어요?”
그녀가 쑥스러운 듯 물었다. 그는 아이를 길러본 적이 없었지만 만약 초등학생인 아들이 있고 그 애가 입학한 첫해에 체육대회 100미터 달리기에서 우승을 했다면 그녀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 부모가 보는 앞에서 일등으로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흰 테이프를 끊으며 결승선을 통과하고 난 아이의 설렘이 담겨 있었다. 목에는 오로지 그를 위한 금메달이 걸려 있었다. 이제 그가 자랑스러움으로 가득 찬 학부모 역할을 할 차례였다. 그는 다른 대본을 달라고 요청할 처지가 못 되었다. 억지로 바통을 쥐여주고 트랙으로 그녀를 떠민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잘했어.”
그는 일단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좀 뜸을 들였다.
“그런데 말이야. 이젠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뭘요?”
“거짓말 말이야. 내가 먼저 꾸며댄 게 사실이지만, 이제 와서 보니까 자네한테 영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그래. 그래, 자네한테 내가 못할 짓을 시켰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녀가 그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으며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그녀가 떨리는 ‘솔’ 음으로 그에게 속삭였다.
“전 정말 괜찮아요. 하라고 하면 더 지어낼 수도 있어요. 아깐 좀 긴장해서 떨었지만 이젠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야. 그만해. 그만하는 게 좋겠어.”
“누구나 처음부터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고요.”
“탓을 하려는 게 아니야. 지금 자네는 정말 잘하고 있어.”
“그럼 왜 그만하라는 거예요?”
“됐다면 그냥 된 줄 알아. 끝이라고. 이제 제발 그만둬.
” 그는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녀는 영문을 몰랐지만 그의 말에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나란히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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