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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소설 <囚>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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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소설 <1화>
흩뿌린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정오의 갯벌. 많은 것이 빠져나간 곳, 바다도 대지도 아닌 곳을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 채우고 있다. 이편의 지평선과 저편의 수평선에서 너그러이 일렁이는 아지랑이. 푸른 내가 감색이 되도록 이 너른 공간에 주인 없는 햇살과 나뿐이다. 환하고 외롭고 행복하다.
눈을 떠 어둠을 대면하는 순간 깨달았다.
나는 갇혔다.
일어나 문으로 다가간다. 어둡지만 내 방이니 아무 방해 없이 걸을 수 있다. 문고리를 비틀며 밀고 당겨본다. 열리지 않는다. 부술까? 하지만 안다. 문을 열면 벽이다. 거대한, 바투 놓인 벽. 본 적도 없고 누가 말해주지도 않았지만 그저 안다. 그래, 직감이라고 해두자. 문을 열어봤자 지금과 같거나 더 큰 불행이 있을 뿐이다. 나갈 수 없고 나가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갇혔다’는 표현이 타당한가? 눈을 깜빡이며 단어를 고른다. ……감금? 유폐? 칩거? 폐쇄? 흡족한 단어를 찾을 수 없다. 별안간 ‘이별’이 떠오른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 꿈의 갯벌로 돌아가고 싶다.
눈을 뜬다.
문을 본다. 여전하다. 이불에서 빠져나와 커피를 끓인다. 매일 아침 진한 커피와 식빵 한 장을 먹고 담배를 피운다. 바쁘거나 아파서 먹지 못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불안하거나 초조하지는 않다. 매일 밤 소주 두 병을 마시고 잠들지만 마시지 못한다고 괴롭진 않다. 늘 FM 93.1메가헤르츠를 틀어놓지만 적막을 못 견디는 것은 아니다. 마트에 갈 때마다 소주, 생수, 라면, 휴지 따위를 박스째 사서 방 한구석에 쌓아둔다. 매번 사는 품목이 비슷하니 영수증에 찍힌 금액도 얼추 같다. 재난 대비라도 하는 거야? 천장까지 쌓인 박스를 보고 놀리듯 묻던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에게 제발 그만 찾아오라는 말을 들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
팀장에게 전화가 온다.
자네 왜 이러나. 어디 아픈가?
그렇게 물으니, 아프다. 너무 오래 아파서 아픈 상태가 오히려 정상에 가깝다고, 아프지 않은 감각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꾸하고 싶다. 팀장님은 건강한 상태가 어떤 건지 아십니까? 물어보고 싶다. 관념을 참고, 사실을 말한다.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문을 열어봤자 벽입니다.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정갈한 침묵이 팀장과 나 사이를 서성인다.
수리공을 불러.
침묵을 밀어내며 팀장이 말한다. 바깥에서 문을 열려면 일단 벽을 깨야 한다.
이건 수리공 문제가 아닙니다.
건조한 목소리로 대꾸한다. 불현듯 ‘기권’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기권하고 싶다.
무슨 뜻인가?
팀장이 묻는다. 그렇다. 수리공 문제가 아니다. 포클레인 문제도 아니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설득해야 한다. 나가자고. 여기서 나가야 한다고. 설득은 쉽다.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돈을 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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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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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2006년〈실천문학〉신인상에 단편소설〈팽이〉가 당선되었다. 2010년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제15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팽이》, 장편소설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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