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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08 10:01 수정 : 2014.05.13 14:58

최진영 소설 <2화>



되도록 많이 벌어야 한다. 문을 열고 나가서 일을 해야 한다. 야근도 하고 주말 근무도 해야 한다. 돈 때문에 싫은 소리 하기도 우는소리 듣기도 싫다. 많이 벌어 풍족하게 살고 싶어서는 아니다. 입만 열면 돈이 없어 죽겠다고 말하는, 돈 때문에 다투고 마음 상하는, 돈이 원수라면서 돈을 신처럼 떠받드는, 돈이면 다 되고 결국 돈으로 외로워지는 사람들의 손과 입과 주머니를 돈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서다. 그래야 내 마음이 고요해지기 때문이다. 불화도 평화도 돈으로 이룩된다.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가난하더라도 돈에 휘둘리지 않고 평온한 마음과 관계를 이루는 거룩한 사람들. 그들이 부럽다. 그들의 부모와 자식이 부럽다. 나는 언제나 돈 걱정을 하며 살았다. 아니, 돈 걱정을 하는 사람들 틈에서 살았다. 모두가 앞장서서 돈을 걱정하니 내 몫으로 남겨진 걱정은 없었다. 나는 기생충처럼 그들의 걱정을 걱정할 뿐이었다. 착한 그들은 강요와 폭력이 아닌 걱정과 불행으로 나를 지배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 안개처럼 나를 에워싸고 축축하게 적셨다. 그 속에서, 나는 필요 이상으로 춥고 무거워졌다. 매일 빛을 꿈꾸었다. 입자이고 파동인 빛. 자유롭고 가벼운 빛. 따뜻하고 찬란한 빛.

돈을 벌어야 한다.

자, 나는 충분히 설득당했다. 문을 열고 벽을 부수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돈이 불러오는 비명 같은 위기감과 불안, 모멸감과 비참함은 차고 넘친다. 넘쳐 나를 뒤덮는 이 더러운 과잉…… 을 털어내려면 나가서 뭐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데, 나가고 싶지 않다.

왜 그러나. 자네처럼 성실한 사람이.

이건, 질문인가? 질책인가? 염려인가? 성실이 뭐지? 일을 잘한다는 뜻인가? 열심히 한다? 부지런하다? 아닌데. 아닌 것 같은데.

이제 그만 나오게. 나와서 자네 일을 해야지.

팀장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을 싫어한다. 자네는 왜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듣나? 내가 지금 똑같은 얘길 몇 번째 하고 있는지 알아? 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차례 반복한다. 나 역시 같은 말을 또 하고 싶지 않다. 입을 다문다.

자네 요새 무슨 문제 있나?

팀장은 크게 화내지 않고 자잘한 짜증을 자주 낸다. 아니다. 화를 내지 않는 게 아니라 내지 못하는 것일까? 보풀로 뒤덮였지만 구멍은 나지 않은 백 년 입은 스웨터 같은 이 사람. 전쟁이 난다면 총 한 번 쏘지 않고도 틈과 틈에 숨어 끝까지 살아남을 이 사람. 이 사람의 웃음을 본 적 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팀장의 인내가 무섭다. 쏟아지지 않고 방울방울 떨어지는 짜증에 지쳤다. 오늘 팀장이 내게 화를 낸다면, 이 씹새끼 당장 안 튀어나와? 라고 소리 지른다면, 어쩌면 나는 사력을 다해 문을 부수고 나가리라. 웃으며 나가 팀장의 목을 졸라 웃음이든 눈물이든 뽑아내고 말리라.

자네가 없으면 이 대리가 자네 일을 대신해야 해. 알지 않나?

안다.

이 대리는 자네보다 사정이 더 딱하지. 가장이잖나.

이 대리는 두 아이의 아버지다. 아이들 이름이 봄이고 가을이다. 피어나고 열매 맺느라 사시사철 감기에 걸리는 아이들이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봄과 가을에게 빨간색, 초록색 털장갑을 사주었다. 이 대리의 아내는 죽었다. 간단한 수술을 받다가 죽었다. 팀장은 이 대리와 나의 무엇을 비교하여 이 대리를 나보다 더 딱한 사람으로 만드는 걸까. 이 대리와 나는 다르다. 누가 누구보다 더 딱할 수 없다. 내가 만약 이 대리이고 지금 이 사람의 말을 들었다면, 이 사람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다. 그런 가정 없이도 나는 이 사람을 가만둘 수 없다. 왜냐, 가장이 아닌데도 나는 딱하니까. 이 사람은 졸지에 이 대리와 나를 딱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문을 부수고 나갈까? 나가서 두들겨 팰까?

어서 나오게.

팀장이 말한다. 나가고 싶지 않다.

이 대리의 아내가 죽었을 때 나는 이틀 동안 장례식장으로 퇴근하고 그곳에서 출근했다. 무표정한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는 겨울이었다. 무서웠다.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이. 죽음 자체가 무척 터무니없이 느껴졌다. 아무나 붙잡고 묻고 싶었다. 왜 죽어야 하지? 계속 살면 안 되나? 어째서 태어나면 반드시 죽어야 하지? 질문을 삼키며 나는 봄과 가을 곁을 맴돌았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때로 웃겨줬다. 그리고 우는 이 대리를 멍청히 바라봤다. 장례가 끝나고 며칠 후 이 대리와 밤새 술을 마셨다. 빈 소주병이 아홉 병이 되자 이 대리가 울었다. 울면서도 아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하고 싶었다. 만나자고 해서 만났고 술 마시자고 해서 마셨고 자자고 해서 잤고 좋아한다고 해서 좋아했다고. 그렇게 1년 넘게 좋아하다가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제발 그만 찾아오라는 말이었다고. 나는 네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하고 혼자 울었다고. 이 모든 것은 세상에서 단 두 사람만 아는 비밀이었는데 이제 네 아내도 사라져버렸으니 완벽하게 나만 아는 비밀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만 울어 이 새끼야. 네 아내는 나쁜 년이야. 나쁜데 좋은 년이지. 나도 네 아내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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