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소설 <3화>
돌아보니 그런 식으로 다가오고 떠난 여자만 다섯 명이었다. 그들 모두 마지막 표정과 말투가 너무나 흡사했다. 무언가에 상당히 질린 표정들이었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저절로 그 표정이 지어졌다. 마침내 나도 내게 질려버렸다. 살면서, 무언가에 질린다는 느낌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그 처음이 나였다. 나는 금방 사랑하고 말 잘 듣다가 결국에는 질리는 인간이었다. 질린다는 느낌은 싫증이나 미움이나 못마땅함과는 확연히 달랐다. 최악이었다. 나에게 질려버리자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다. 내 몸, 내 목소리, 나의 일, 나의 습관, 나의 생활, 그 모든 것에서 손을 떼고 싶었다. 제발 그만 찾아오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게서 무관해지고 싶었다.
기다리겠네.
팀장이 말한다.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문을 쳐다본다. 오늘, 며칠이더라. 집 안에는 달력도 시계도 없다. 깜깜할 때 들어와 소주를 병째 들이켜다 잠들고, 네댓 시간 후 일어나 식빵을 입에 물고 출근하고, 아주 가끔 빨래를 하고 먼지를 털고, 빈틈이 생기자마자 장을 봐서 틈을 채워 넣는 이곳에서 시간관념은 불필요하다. 하루하루가 다르지 않다. 오래도록 그렇게 살았다. 그리 사는 게 너무나 당연해서, 태어나고 죽는 것을 당연하다 여기는 것처럼 당연해서, 사랑하면 으레 떠나나 보다 생각하고, 패인 자존심이나 회복이나 다른 인생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은 나를 더 괴롭게 할 뿐, 어디로 새는지 모르는 시간은 통장에라도 쌓여 때가 되면 되찾아 맘껏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한 적도 없지 않지만, 지방간이나 혈중 콜레스테롤로 쌓인다는 것을 이젠 모르지 않고…… 사실 내가 기다리던 ‘때’라는 것이 대체 어떤 때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대로 늙으면 요양원에나 들어가야 할 텐데 그렇다면 나는 청춘을 팔아 요양원에 들어갈 돈을 모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요양원에도 못 들어가고 집도 가족도 없이 부랑자로 살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시간은 질병과 피로로 쌓이고 돈은 아무리 벌어도 삽시간에 사라지는데…… 어째서지? 월세가 자꾸 오른다. 대체 왜? 무리해서라도 은행 빚을 져야 하나? 다들 그런다고 하니 그래야 하나? 내 돈으로 집 얻나, 은행이 얻어주지. 은행 돈이 내 돈이지. 그렇게들 말한다. 은행이 무슨 구세군인가? 우리 모두 불우이웃인가? 이자와 월세가 뭐가 다르지? 빚을 져서 살 곳을 마련하는 게 언제부터 당연해졌지? 세상은 왜 이런 식으로 굴러가지? 요양원에는 나보다 부모님이 먼저 간다. 우선 그 돈을 마련해야 한다. 청춘을 팔아 부모님의 요양원비를, 중년을 팔아 코앞에 닥친 내 노년의 요양원비를 벌어야 한다. 황혼은 어떨까. 멋질까? 가장 멋진 때니까 젊을 때 개고생해서 준비하는 게 당연한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때일까? 그런데 어제도 뉴스를 봤다. 일흔 넘어 자살한 노인에 대한 뉴스였다. 그와 비슷한 뉴스를 일주일 전에도 봤고 보름 전에도 봤다. 이상하다. 다들 오르기에 무언가 끝내주는 게 있을 줄 알고 평생을 바쳐 오르고 보니 그 끝은 텅 빈 허공이더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정말 이상하다. 다들 이렇게 사나? 아닐 텐데. 그럴 리 없는데. 모두들 한결같이 멍청할 리는 없지 않나. 춥다. 따뜻한 물을 맘껏 쓰고 싶다. 집도 차도 없고 방은 차가워서 다들 내게 질렸나? 시간은, 겨울 외투 안주머니 한구석에서 납작 뭉치는 먼지 같은 것이다. 대체 쓸모가 없다. 아니다. 시간은 없다. 사람들은 말한다.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바빠 죽겠고 짜증 나 죽겠고 내가 너 땜에 못 살겠다고. 그럼 우리에겐 뭐가 있지? 스트레스와 빚이 있지. 우린 무엇으로 살지? 마이너스 통장과 각종 암 보험 가입자로 살지. 나가지 않는다면, 나는 이곳에서 끝나지 않는 하루를 살 수도 있다. 그런데 팀장은 어째서 내게 기다린다고 말할까? 기다린다면, 얼마나 기다릴까? 아니, 얼마나 기다렸을까? 물어볼까? 제가 저 문을 열지 않은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토록 기나긴 꿈을 꾸는 동안 지구가 제자리를 몇 바퀴나 돌았습니까? 저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 언제입니까? 그때 추웠나요? 지금은 춥지 않습니까? ……알고 싶지 않다. 나와 상관없다.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면, 저곳 역시 나가야 할 곳이다.
더 늦기 전에 나와야 해.
팀장이 말한다.
그러다 건강까지 버리면 정말 끝이야.
이 대리의 아내는 건강했다. 몸이 가볍고 재빨라 잘 달렸다. 기분이 좋으면 혼자서 방방 뛰는 여자였다. 종종 이렇게 말했다.
기분이 좋아 가만있질 못하겠어. 나는 오늘 지구 끝까지 뛰어갈 수도 있어.
그 여자가 말하는 지구 끝에 대해 생각했었다. 어느 곳이나 지구 끝이었다. 너와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지구 끝. 저마다 이 세계의 끄트머리에 있어 우리 각자 손을 뻗어 서로를 만질 때도 어김없이 세상에서 가장 먼 사이였지. 자네도 잘 알지 않나. 거기 그렇게 있어서는 안 돼. 위험해.
잘 안다. 그런데, 여기만 위험한가? 그곳은 안전한가?
일탈은 잠시여야 일탈 아닌가.
일탈이라면, 지금까지의 삶을 일탈로 돌릴 수도 있다. 나는 잘못 살았다. 안다. 이곳에서 나가지 않는 지금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나간다고 뭐가 다른가? 이러나저러나 나는 요양원에도 가지 못하고 가난하고 외롭게 살다 홀로 죽을 것이다.
박 차장도 정 과장도 다들 자네를 걱정하네. 그러다 몸 다 망가지고 인생 종 치는 거 시간문제라고 말들이 많아. 자네도 잘 알지 않나. 사람은 그렇게 살면 안 돼. 당장의 쾌락만 좇다가는 남은 생을 모조리 망치게 돼.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야지. 자네는 아직 젊잖나.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아야지. 그렇게 하나하나 이뤄가며 사는 거야. 그게 바로 사는 재미 아니겠나.
그런데 일흔 넘은 그 노인은 왜 자살했을까? 팀장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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