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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12 09:35 수정 : 2014.05.13 14:58

최진영 소설 <囚> ⓒ이현경



최진영 소설 <4화>



옳은 말씀입니다. 팀장님. 기억나시죠?

무엇 말인가?

지난번에 설렁탕 먹으며 우리 다 함께 보지 않았습니까. 그게 9시 뉴스였습니다. 30대 주부가 두 아이를 먼저 죽이고 자기도 목을 매지 않았습니까.

……그래. 자세히 기억은 안 난다만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지.

아닙니다. 종종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부분 그럽니다. 같이 밥을 먹으며 9시 뉴스를 봅니다. 밤 9시 뉴스 말입니다.

…….

우리가 어째서 매일 밤 9시 뉴스를 같이 보면서 밥을 먹습니까? 우리가 군인입니까?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런 때도 있는 거지. 나태하게 사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저도 그런 때이고 팀장님도 그런 때이고 차 부장님도 그런 땝니다. 모두의 그런 때가 5년 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전부 그런 때 아닙니까? 좋습니다. 이곳에서 나가면 저는 부지런히 돈 벌어 결혼하고 자식 낳으면서도 팀장님과 매일 아침 9시에 만나 밤 9시 뉴스를 같이 보면서 순댓국을 먹고 자정 가까이 퇴근할 겁니다. 저는 돈도 쥐꼬리만큼 벌면서 가정도 못 챙기고 음식물 쓰레기도 안 버리고 애들이랑도 안 놀아주니까 무능력하거나 무관심한 남편이 될 겁니다. 저나 아내 둘 다 돈을 벌면 애를 키울 수가 없고 둘 중 하나만 돈을 벌면 애를 키울 수가 없습니다. 아닙니까?

이봐, 이 대리를 봐. 이 대리는 잘해내고 있지 않나.

저는 이 대리가 아닙니다. 이 대리가 한다고 저도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이 대리는 하는데 저는 못 한다고 제가 덜떨어진 놈도 아니란 말입니다. 팀장님은 어떻게 확신합니까? 이 대리가 잘해내고 있다고? 잘한다는 게 대체 뭡니까? 이 대리의 두 아이가 지금 누구와 있는지 아십니까? 보모랑 있습니다. 이 대리는 보모를 고용하기 위해 월급을 반 넘게 씁니다. 애들이 클수록 돈은 더 들 테고 그 돈을 감당하려면 일을 더 해야 하고 그럼 그만큼 애들을 어딘가에 맡겨야 하니 돈은 더 나갑니다. 팀장님,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학원 학교 학원 학원 학교 학원 학원 학원 학교, 그렇게 갓난애가 어른이 되잖습니까. 저는 말입니다. 이상합니다. 그럴 바에야 가정이란 게 왜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또 애들이 잘못되면 가정교육 운운하지 않습니까. 저는 제 아이가 절 보고 ‘저 아저씨는 누군데 가끔 우리 집에 들어와 자기 맘대로 담배를 피우고 똥을 싸고 내게 잔소리를 하지?’ 하고 생각할까 봐 무섭습니다. ‘내가 네 아빠다’라고 가르쳐주면 ‘아, 아저씨는 아빠군요. 그런데 아빠가 뭐예요?’라고 물어볼까 봐 정말 걱정입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그 질문에? 저는 분명 제 아이에게 동네 슈퍼 아저씨보다도 낯설고 어색한 사람이 될 겁니다. 그러다 자식을 죽이고 목을 매고, 늙은 남편이 병든 아내를 죽이고 밀폐된 방에서 연탄불을 피우고, 엄마가 게임 좀 그만하라고 하면 아들은 칼을 휘두를 겁니다. 우리는 매일 밤 한 식탁에 앉아 돼지 국밥을 먹으며 누가 누굴 죽이고 스스로 죽었다는 9시 뉴스를 보다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일을 할 겁니다. 그런 것은 이상하지 않고 여기 처박혀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저는 이상합니까? 건강하지 않은 겁니까? 나태한 겁니까? 위험합니까?

……그러지 말게.

여기도 이상하고 거기도 이상합니다.

그건 핑계야.

목소리가 문득 엄격하다.

그런 말은 비겁해. 나약해빠진 거라고. 이봐, 다들 그렇게 살지 않나? 자네 말처럼 죽고 죽이는 사람들은 몇 안 돼. 예외지. 그러니 뉴스에도 나오는 거 아닌가? 죽거나 죽이지 않으면서도 주어진 조건 따라 충실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야. 조건이 마음에 안 들면 노력해서 스스로를 바꿔야지. 스스로를 바꾸면 조건도 저절로 바뀌네. 앓는 소리야 누구나 하지. 하지만 자네처럼 그런 곳에 처박혀 현실을 회피하는 사람은 소수야. 소수는 돌연변이지. 예외는 오류야. 알지 않나. 하나의 시스템에서 돌아가는 열 개의 프로그램 중 여덟 개는 멀쩡하고 두 개가 돌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그 두 개를 비정상으로 분류하고 손을 대지, 두 개를 고치자고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는 않아. 그렇지 않나? 우리가 하는 일이 그런 일 아닌가.

나는 비겁하다. 나는 오류다. 이 말은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 그렇다. 나는 지금 스스로를 바꾸고 있다. 팀장이 추구하는 변화와 다를 뿐이다. 내게 동의를 요구하는 팀장의 말투가 거슬린다. 생각해보면 ‘자네는 참 성실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기분이 희박하다. 희박해 토하지 못하고 꺽꺽거리면서도 그게 바로 정상인 줄 알고 살았다.

나는 자네를 뉴스에서 보고 싶지는 않아. 나오게. 나와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일을 하게. 좀 더 의미 있고 생산적인 일에 시간과 정성을 쏟게. 인생을 낭비하지 마.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의자에 앉아 스스로 별 보람도 의미도 없다고 생각되는 일을 반복하며 보낸 지난 10년은 낭비가 아닌…… 절약이었나? 나는 꼭 필요한 것에만 나의 인생을 썼던가? 뭉텅뭉텅 잘려나간 듯한, 돌아보면 단 몇 문장으로 요약되는 지난날이 내게 반드시 필요한 날들이었나? 아니, 낭비 아니면 절약인가? 이 세계에 적당함이란 없나? 모르겠다. 무섭다. 질렸다. 지긋지긋한 물음표. 말없이 휴대전화의 종료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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