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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13 18:01 수정 : 2014.05.16 10:07

최진영 소설 <6화>



계십니까.

맙소사. 무척 가까이 들린다. 벽이 그토록 얇은가?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거기 계십니까.

없다. 나는 여기 없다.

잘 들으세요. 제가 문을 열 겁니다. 저 혼자서는 열 수 없으니 그쪽에서도 애써주셔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이불 속에 기어들어 숨을 참는다.

힘드신 거 압니다. 고객님 같은 분 많이 봤어요. 고객님, 마음먹기가 힘든 거예요. 나오지 않겠다고 버티던 분들도 일단 나오면 대만족하십니다. 지금은 그곳이 좋으시죠. 그런데 그러다가 돌아가십니다. 정신 차리세요. 한창나이에 왜 그러고 계십니까, 대체.

저자는 문을 어떻게 열 작정일까. 부술까? 그건 부당하다. 저 문은 내 허락 없이, 아니, 집주인 허락 없이 부술 수 없다. 설마 집주인에게도 연락을 했나? 문을 부숴도 된다고 호락호락 허락할 아줌마가 아닌데. 아줌마는 좋겠다. 집도 많고. 내 방 내 문을 부수라고 내 허락 없이 허락할 수도 있고. 아줌마는 햇빛 속에 살겠지? 바보들. 수리공이 아니라 아줌마를 데려오면 나를 당장 꺼낼 수 있을 텐데. 아니다. 아줌마도 못 한다. 나를 쫓아낼 수는 있어도 꺼내지는 못한다. 그건 아무도 못 한다.

자, 고객님, 부모님 생각부터 해봅시다.

부모님?

자제분이 이런 상태라는 걸 아시면 부모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이건 정말 엄청난 불효예요.

부모님 얘기를 들으니 절로 돈 생각이 난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남의 자식들처럼 여행도 보내드리고 용돈도 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불효자식이다.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부모님 보험료도 낼 수 없고 다달이 드리는 용돈도…… 싫다. 나가기 싫다. 없는 사람처럼 살고 싶다.

고객님, 아직 앞길이 구만리 아닙니까. 벌써부터 이러시면 안 됩니다.

구만리 앞길이라니…… 토할 것 같다. 바쁜 것이 오히려 권태로운 나날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저 사람은 바로 벽을 부수지 않고 어째서 저런 말을 늘어놓는 거지?

고객님. 진짭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늙어서 고생하신다니까요. 그런 경우가 한둘이 아니에요. 보고된 자료만 정리해서 읊어도 평생 걸린다니까요. 잘 아시지 않습니까?

보고도 싫고 자료도 싫고 정리도 싫다. 다 필요 없고, 우리 부모님은 나처럼 어디 갇힌 적도 없는데 늙어서도 충분히 고생하고 있다고 대꾸하고 싶다. 젊어 고생하는 것처럼 늙어 고생하는 것 역시 이제 더는 특이한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참는다. 나는 없다. 없는 사람이다.

어, 갯벌.

찬란하고 고요한 정오의 갯벌.

물이 서서히 들어온다.

바다가 점점 넓어진다.

먼 곳에서 차락차락 바닷물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다정하고 따뜻한 바다가, 내게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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