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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15 10:11 수정 : 2014.05.16 10:07

최진영 소설 <7화>



눈을 뜬다.

문을 본다. 맙소사. 잠들었던가? 내가? 이런 상황에? 저편에 귀를 기울인다. 잠잠하다. 문으로 살살 다가가 소리를 찾는다. ……아니, 이분은 뭐 자식이 없으니까. 자식 얘기면 한 방에 해결되는 사람도 있거든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나 뭐 그런 걸 건드리는 게 최곤데……. 애인 없는 거 확실해요? 회사 사람들이 모르는 뭐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아, 저 나이 되도록 결혼도 못 하고 여자 친구도 없이 대체 뭐 하고 살았대. ……딱 견적 나오네. 사람 성실하면 뭐합니까. 지금 저러고 있는데. 그러니까요, 일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더 위험하다니까. 아, 그놈의 성실…… 어떤 성실한 사람은 말입니다. 일이 좋아 성실한 게 아니고요. 달리 할 게 없어 성실한 거고요. 일 말고 다른 거에 꽂히면 일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꽂힌 그거에만 성실해진다니까요. 지금 못 빼내면 저 사람 인생 완전 끝이에요. 저러다 죽어. 아니, 대답 자체를 안 한다니까. 의사? 이보세요. 일단 저 사람이 저기서 나와야 의사든 장의사든 만날 거 아닙니까. 저 사람한테는 그럴 의지가 전혀 없다니까요. 이건 하느님이 나서도 안 될…… 강제로요? 벌써? 그건 부작용도 크고 비용도 더 청구……. 이상하다. 왜 다들 나를 빼내지 못해 안달이지? 문 앞에 선 채로 방 안을 둘러본다. 낡고 춥고 좁고 어둡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안락하고 평온한 곳. 나는 이곳에서 벌거벗고 춤추고 노래하고 맘껏 웃고 울고 취할 수 있다. 괴성을 지를 수도 침묵에 묻힐 수도 있다.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직 이곳에서만 그럴 수 있다. 이곳에서 내가 괴로운 이유는 바깥을 신경 쓰기 때문이지. 바깥을 궁금해하고 바깥에 미련을 두고, 바깥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노심초사하고, 그들의 기대에 귀를 열기 때문이지. 바깥에서 해야 할 일들에 마음을 쓰고 바깥의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기 때문이지. 바깥을 몽땅 잊는다면 이곳에서 나는 한없이 자유로울 수 있다.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 순간은 분명 올 것이다. 속지 말자. 들키면 안 된다. 나가면 안 된다. 문자 수신음이 울린다.

문을 부수라고 했네. 다 자네를 위해서야. 거기서 나와야 해. 지금은 그 이유를 몰라도 나오면 알게 될 거야.

문자를 다 읽기를 기다렸다는 듯, 먼 곳에서부터 쿵. 쿵. 쿵. 굉음이 터진다. 포클레인이나 트럭 소리라기엔 부족하다. 대포 소리에 가깝다. 탱크, 아니, 어마어마한 덩치의 공룡이다. 공룡의 발소리다. 팀장에게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문자를 쓴다. 손이 벌벌 떨려 글자를 제대로 찍을 수 없다.

나가고 싶지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 문이 흔들린다. 부들부들 떨다 휴대전화를 떨어뜨린다. 급히 주워 문장을 마저 쓴다.

않습니다.

잠시 정적.

안다. 알 수 있다.

일격을 가하기 전 일시적 적막이다.

이 공포를 견딜 수 없다.

저를 가만히

무너진다. 벽이다. 벽이 깨졌다.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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